중국 사상가 맹자는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것을 정치의 요체라고 생각하고, 이른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모아둔 재산이나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떳떳한 마음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산업 생태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국가 산업의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 수 있는 ‘항산’에 비유될 수 있다. 소부장 산업은 다양한 산업군에 필수적인 재료와 부품을 공급하면서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뿌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면 한 국가의 산업 경쟁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하게 자리 잡기 어렵다. 차세대 반도체와 이차전지, 친환경 자동차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소부장 산업의 기술력은 글로벌 경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라 할 만하다. 소부장이 튼튼해야 우리 경제의 산업 경쟁력도 당당해진다. 소부장이 여러 산업의 중심을 흔들림 없이 지원해 준다면 국가 산업은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항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부장 산업이 국가 경제의 든든한 ‘항산’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소부장 산업 육성을 ‘산업 생태계’라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부장 기업들이 모일 수 있는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수요기업-공급기업 간 협력 고리를 만들어줄 혁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우수 인재 양성과 함께 연구 인프라 활용 등 소부장 산업 육성에 필요한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 소부장 기업이 차세대 소재부품을 연구개발(R&D)하려고 할 때 외부의 전문가들과 연구 장비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선도 기술 자원을 보유한 해외 연구소와 공동 연구 형태의 협업도 추진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가져올 만한 위기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상정하여 상황별 대응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핵심 광물이나 기술이 특정 지역, 특정 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더라도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대비책은 다각적으로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기초 체력이 부족한 운동 선수가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이자 허리인 소부장의 기술력이 탄탄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는 불확실해질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30일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개막한 ‘2024 소재부품장비뿌리기술대전’이 개막되었다. 첨단 제품 전시, 기술 세미나, 비즈니스 상담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항산’이라 할 수 있는 소부장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라 주목된다.
소부장은 단순히 경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반의 기술 경쟁력 향상과 글로벌 기술 패권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뿌리 산업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소부장 산업이 국가 경제의 ‘항산’ 역할을 충실히 하여 국민이 ‘항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를 비롯하여 산학연 주체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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