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100년된 나무를 뿌리 채" 산불 막겠다고…이게 말이 돼? [지구, 뭐래?]
뉴스종합| 2024-11-05 18:41
뿌리 채 뽑혀 임도 아래로 버려진 나무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멀리서 산을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개발 지역에서는 깎인 산면 아래로 토사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확인됐다”

강원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 1973년 7월 10일 천연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엄정자연보호지역’이다. 국내 제1호 람사르 습지도 위치해 있다. 이런 대암산조차 나무를 베는 등의 훼손 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내에 이름만 보호지역일 뿐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페이퍼 보호지역’이 곳곳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관련 법안을 개선해 보호지역 내 개발이 현재처럼 쉽게 벌어지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은 4일 ‘돌아오지 못한 보호지역 :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통해 대암산 벌채 현황을 지적했다. 이들은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 2020년 9월 22일에 벌채가 진행됐으며, 현지 조사를 간 지난 6월까지도 벌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대암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보존지역 지정 가이드라인에 따른 엄정자연보호지역이다. 국내의 엄정 자연보호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백도와 칠발도, 덕유산국립공원 내 안성 칠연계곡 광릉요강꽃 특별 보호구역 등 2338.37km²에 걸쳐 15개 구역이 지정돼 있다.

엄정 자연보호지역에는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과학 연구 등 목적이 아니라면 인간의 활동이나 방문을 엄격하게 제한된다. 지구가 인간의 활동에 더욱 영향을 받게 될수록 생태계가 잘 보전된 지역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2024년 대암산 천연보호구역에서 확인된 벌채 임지. 붉은색 선 왼쪽이 보호지역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문제는 이같은 엄정 자연보호지역에서도 나무를 베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 중 10㏊에서 벌채가 진행돼 왔다. 이는 광화문 광장의 약 4.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해당 지역의 천연림은 대부분 모두베기가 이뤄졌고, 베어진 곳에는 어린 침엽수가 줄 지어 심어졌다. 현장에서 베어진 채 남겨진 밑둥의 나이테를 살펴보니 약 100년 된 나무로 밝혀졌다.

대우산·대암산 천연보호구역을 감싸는 지역에도 추가적인 개발 행위가 발견됐다. 천연보호구역 남쪽과 동쪽 양 옆에서 개설된 산불진화임도다. 산불진화임도의 유효 너비는 3.5~5m로 소방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일반 임도보다 폭이 넓다. 산림청은 산림청은 산불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이같은 임도를 2027년까지 총 3332㎞의 임도를 확충할 계획이다. 경부고속도로의 8배에 달하는 길이다.

대암산의 산불예방임도. 일반 임도보다 더 넓다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그러나 그린피스 등은 대암산에 임도가 불필요하다고 봤다. 산림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은 입산자 실화,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소각 등 인간 활동에 의한 경우가 전체 산불 원인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정작 대암산의 임도 건설 현장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워,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즉, 대암산에 산불진화임도를 만드는 건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임도 개발을 위해 숲이 제거되면 땅의 뿌리가 사라져 토양의 응집력이 약해진다. 이는 토사 유실 현상을 일으키고, 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임도를 개설하면 외래종이 쉽게 확산하고, 차량 충돌로 야생동물이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물의 행동을 해롭게 변화시키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쳐 해당 지역 동물의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임도 건설 과정에서 흙과 돌이 흘러내린 현장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대암산에 원칙적으로 임도 자체가 개설될 수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행 법상 보호지역의 종류에 따라 벌채 금지 여부를 비롯해 근거 법률, 소관 부처, 지정 및 관리 기관 등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 특별대책지역, 수변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에는 임목벌채를 금지하는 법률 규정이 없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명승 및 그 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도시자연공원구역, 산림보호구역, 야생생물특별보호구역, 자연공원 등은 원칙적으로는 임목 벌채가 금지돼 있음에도 예외 규정 및 협의에 따라 벌채가 허용된다.

대우산과 대암산과 같은 보호지역은 말 그대로 보호를 해야 하는 곳이다. 야생동식물을 비롯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다 탄소 저장 및 기후 조절 등 인간에게도 꼭 필요한 역할을 해서다.

대우산·대암산 천연보호구역 인근의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에서 확인된 벌채 임지 [그린피스·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이에 한국을 포함한 UN 산하 196개국은 지난 2022년 12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KMGBF) 채택에 서명했다. 2030년까지 최소 30%의 육상과 해양을 보호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이 골자다.

현재 지정된 보호지역은 총 국토 면적의 육상 17.45%, 해양 1.81%.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하기에 보호지역 지정이 더딘 데다, 이미 지정된 보호지역의 관리 실태마저 유명하실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훼손되고 개발되는 보호지역을 방관한 채 목표 수치에만 집중한다면 KMGBF가 목표한 실질적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보호지역의 개발 행위는 야생동식물 서식처와 탄소흡수원 파괴로 이어지고 산림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만큼 한국정부에 보호지역 관련 법안을 개선하고 개발을 멈출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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