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글을 찬양한 이는 일본인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 씨다. 전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로 판화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한 그는 한국어와 한글에 매료돼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 대학에서 한국어학을 다시 전공했다. 한국어학, 일한대조언어학, 음운론, 어휘론, 문법론과 언어존재론 등을 연구하며 2010년엔 ‘한글의 탄생’으로 마이니치신문 사와 아시아조사회가 주최하는 제22회 아시아태평양상대상을 받았다. 이 책이 한국어판 ‘한글의 기적-<문자>라는 기적’(돌베개)으로 번역 출간됐다. 한국어나 한글을 전혀 모르는 일본 독자를 위해 쓴 것이 한글을 모국어로 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흔히 외국인이 다른 언어에 갖는 관심이나 호기심 정도를 넘어 전문적인 한국언어학 책이라는 점에서 우선 그 깊이와 폭이 놀랍다. 한글의 음운학, 형태학, 발생학, 오늘날의 쓰임새까지 꿰뚫으며 한글의 구조와 특징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와 일본문자, 베트남문자 등 아시아 문자들과의 비교 연구는 돋보이는 부분이다.
여기에 다양한 예문과 역사적ㆍ언어학적 상상력을 구사하며 한글 창제자들이 어떻게 말, 소리에서 글자, 문자를 석출해냈는지 밝혀가는 글쓰기는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그렇다면 저자가 가장 감탄을 금치 못하는 한글의 탁월함은 무엇일까.
‘정음(正音)’은 존재가 모호했던 모음에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알파벳 로드, 즉 자음자모 로드가 아시아를 가로지른 종착지에서 형태가 모호했던 모음에 비로소 형태를 부여한 게 정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한글이라는 문자를 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태어난 한 가지 독특한 문자 체계를 아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단음문자, 알파벳, 지중해에서 자라난 단음문자는 북방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그리스문자, 키릴문자나 라틴문자=로마자처럼 모음자모와 자음자모를 일직선상에 배열하는 2차원적인 배열 시스템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나 아시아를 건너온 단음문자들은 모음과 자음이 각각의 자모로서 지닌 독립성과 단위성이 희박했다.
여기에 정음의 독창성이 발휘된다. 정음은 단음문자=알파벳 시스템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단순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기보다 원리적으로 거절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알파벳 시스템의 천년 이상 희미했던 모음의 공극을 모음자모라는 선명한 형태로 충족시켰으며, 나아가 2차원적 병렬 배열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입체적 형태로 전환시켰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초성+중성+종성>, 즉 <자음+모음+자음> 각각에 뚜렷한 <형태>를 준다는 것-이것이야말로 <문자를 만든다>는 문자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15세기 정음학이 도달해 있었던 결정적 높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정음 자형의 유래를 파스파문자의 모방이나 중국 남송 ‘육서략’의 ‘기형성문도’에서 그 기원을 찾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세종은 중국이든, 몽골이든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건 극한까지 배우려고 했겠지만 이를 계승하는 일은 용인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음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정음의 음성학적인 기술의 리얼리티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극찬한다.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또 다른 지점은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를 혁명으로 본 데 있다. 당시 한자문화에 대한 일종의 ‘지의 혁명’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세종이 ‘정음 에크리튀르(글쓰기) 혁명’으로 투쟁한 상대는 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한 상대, 즉 역사가 쓰이기 시작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꿰뚫는 ‘한자 에크리튀르’였다는 것이다. 투쟁의 상대는 바로 역사이며, 세계였던 셈이다. 이에 최만리 등 당시 지식인의 반발은 당연하다. 저자는 최만리를 둘러싼 담론의 핵심은 언어학적ㆍ문자론적 지의 지평에서 벌어진 사상 투쟁이었다고 지적한다.
몇년 전 찌아찌아족의 문자로 채택된 한글의 우수성과 세계화 가능성이 외국 학자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는 점에서 반갑다.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 외 옮김/돌베개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