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석에서 말한 ‘최동원론’은 의미심장하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최동원을 최고로 친다고 들었다. 팀이 필요하면 컨디션 상관없이 등판하는 선수이기때문이다.”
공무원도 인기와 경력 관리에 연연하기보다 필요할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관료생활은 줄곧 그래 왔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반을 진두지휘한 소방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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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는 한 은행 CEO는 “직무 완수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의 ‘열정’을 봐왔고 그의 관치는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수단이었기에 반발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은행 CEO는 “실물경제의 이해도가 탁월해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관료”로 기억한다.
그는 정통 금융관료로서 다양한 경력이외에 아주 특별한 이력을 가졌다. KS(경기고,서울대)출신의 청년 김석동은 당시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20대 청년 재벌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표선수격이던 제세그룹이 무너진 이후 젊은 오너 기업에대한 은행의 갑작스런 대출금 회수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훌훌털고 공무원으로 선회했다. 그가 나이에 비해 행시 기수(23회)가 늦은 이유다. 당시의 발로 뛴 실물경제 경험은 지금도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집권 후반기 MB정부의 구원투수가 됐다. 김 위원장의 등장을 계기로 금융회사 경영지배구조개선법 제정작업이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