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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성인소설 알리바바(188)
라이프| 2011-02-28 17:13
<188>적과의 동침 (25)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두 발 전진하기 위한 단계이다. 현금 500만원과 아울러 법인카드를 받게 된 순간 뒤로 슬쩍 물러남으로써, 콩알만이나 한 진주반지까지 덤으로 받아내는 유리의 수완에 강준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원래 이 반지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물려받은 거예요. 그런데 문득 이걸 유리 양에게 선물하고 싶어졌어.”

신희영은 이렇게 말하면서 선뜻 진주반지를 빼내어 강유리의 손가락에 직접 끼워주었다. 그러자 골프연습장을 말아먹은 이후 눈칫밥으로 연명해온 강준호는 그 말 뒤에 숨어있는 속뜻을 즉시 알아챌 수 있었다.

‘너 봉 잡았다. 며느리가 되어달라는 뜻이야.’

강준호는 오로지 눈빛으로 그의 딸인 유리에게 기쁜 마음을 전했다. 유리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녀 역시 강준호가 전한 눈빛 대화를 충분히 이해한 듯싶었다.

“앞으로 제가 유호성 군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엔 사모님께 도움을 청할게요. 다리 좀 놓아주세요.”

“물론이지. 당장 오늘 밤에 만나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급하거든? 남편이 주책 떠는 일에 그 녀석이 동조하는 날엔 골치 아파져요. 자동차 경주의 위험성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봐요. 그 위험한 운동에 등 떼밀어가며 애를 밀어 넣다니… 남편은 제 정신이 아니에요. 내가 다리를 놓을 테니 우리 호성이를 유혹해서 골프에 전념하게 해줘요.”

꿩 먹고 알 먹고… 현금 500만원에 법인카드와 콩알만이나 한 진주반지까지 거머쥔 강유리는 그러나 아직도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진정 목표로 삼은 것은 이런 유형의 재물 따위가 아니었다. 진심! 강준호의 진심을 사로잡고 싶었던 것이다. 언젠가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월드컵 경기 8강에 오르고도 이렇게 외치지 않았던가. ‘나는 아직도 갈증이 난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갈게요, 오늘 밤에 아드님을 만나려면 미장원에라도 먼저 다녀와야겠어요.”

“그래요, 이따가 전화 할게요.”

강준호는 유리가 돌아나가는 뒷모습을 감격에 겨워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의 뒷모습은 전투에 나가기도 전에 이미 승리한 전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거침없는 그녀의 뒤태,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이어지는 그 여운… 그는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언젠가 동업자였던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중얼대던 말을 떠올렸다. ‘됐어, 여전히 박음직하다, 유리…’

“참 예쁘지요? 골프선수 치고 저렇게 예쁜 아가씨는 처음 봐요.”

“그럼요, 누구 딸인지… 정말 예쁘네요.”

신희영의 말에 강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춤추듯이 사뿐사뿐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에는 누구라도 질투를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매력이 숨어있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실크소재로 만들어진 짧은 스커트를 즐겨 입었기 때문에 담쟁이덩굴처럼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는 옷자락 속으로 늘씬한 허벅지가 엿보이곤 했다.

“언제 봐도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폭포수 같아요.”

“웬만한 사내 녀석들은 그 속에 파묻힌 하얀 목덜미에 눈길이 스치기만 해도 기절할 만하죠. 가슴이 벌렁벌렁 할 거예요.”

“좀 전에 유심히 보니까 쇄골이 오목하고… 젖가슴도 예쁘더라고요. 게다가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도 일품예요. 내친 김에 호성이와 잘 이루어져서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어요.”

통영 가는 길에 자칫하면 삼천포로 빠진다고, 예산안에 대한 브리핑을 받던 신희영과 강준호는 엉뚱한 길로 빠져든 것을 감지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답답한 쪽은 밤새워 브리핑 준비를 했던 마케팅 부장 이하 말단 직원들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강유리는? 언젠가 크루즈 선상에서 내기골프를 감행하던 때처럼 숨결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신경이 팔팔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남자를 유혹하기 전에 생겨나는 본능적 감각이었다. 그 유혹의 대상이 유민그룹의 황태자였으므로 온몸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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