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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업가ㆍ휴먼 DNA’ 정주영이 부활한다
뉴스종합| 2011-03-10 10:03
# 단군 이래 최대역사라며 기대를 모았던 1986년 서산 간척사업 현장.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 데모가 거셌다. 비서진은 큰 일 났다 싶어 ‘회장님’께 긴급 보고했다. 돌아온 것은 호통. “무슨 전쟁이라고 났나. 사람이 해결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어?”

# 1971년 9월. 조선 사업 꿈을 꾸고 회장은 런던으로 날아갔다. 조선소 하나 없이 가진 것은 배짱 뿐이었다. 다들 무모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같이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 리바노스로 부터 26만t 짜리 2척을 수주하고 돌아왔다.

# 어느 해 그룹 임원이 사업 실적을 보고하면서 실적 수치를 하나 끄집어 냈다. 대뜸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불호령이 덜어졌다. “어, 자네. 작년에는 그 숫자를 다르게 얘기했잖아.” 엄청난 기억력이었다.



한국경제의 거목(巨木)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들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전쟁을 빼 놓고는 웬만한 일엔 눈하나 꿈쩍 않는 큰 배포, 불가능은 없다는 저돌성, ‘돈 냄새’를 맡는 귀신같은 능력, 비상한 사업 수완. ‘창업주의 교과서’로 불리는 그를 상징하는 말 들이다.

왕(王)회장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아산 10주기(21일) 추모행사가 10일부터 사진전 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벌써 재계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선 ‘아산 열풍’이 감지된다.

벌써 10년이 됐지만, 우리가 그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행렬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은 그의 족적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아산이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소 판 돈으로 가출해 오늘날 현대그룹을 일군 성공신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앞선 경영인이었고, 앞선 리더였고, 앞선 휴머니스트였다.

정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신용이 자본”이라며 신용론을 펼쳤고, 글로벌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동차, 건설, 조선 등 미래사업을 보는 통찰력은 단연 돋보였다. 특히 현대건설 주식의 50%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에 쾌척하는 등 기업의사회적책임(CSR) 개념을 일찍 전파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중시하는 ▷도전ㆍ창의 정신 ▷1등 주의 ▷미래 통찰력 ▷신뢰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의 덕목을 두루, 그리고 십수년 전에 이미 실천했다는 점에서 ‘정주영 DNA’는 현대 경영인들의 사표가 되고 있다.

왕회장의 매력은 척박한 자본주의가 아닌 휴머니즘 자본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했다. ‘직원’을 친자식처럼 아꼈다. 요즘의 ‘행복한 회사’, ‘직원이 만족하는 회사’ 개념의 모태는 어쩌면 왕회장일지 모른다. 

일 앞에선 냉철했고, 그래서 직원들을 많이도 야단쳤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다음엔 조용히 그 직원을 불러 다독이면서 막걸리 잔을 주고 받았다. 얼큰해지면 젓가락 장단에 맞춰 애창곡인 ‘가는 세월’을 불렀다. 사람에 대한 정이 결국 그가 평생 대북사업에 몰두하게 만든 큰 요인일 수도 있다.

정 명예회장을 기억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인간 정주영’의 매력을 얘기한다. “통이 크면서도 세심한 분”(신영수 한나라당 의원), “대기업 회장 같지 않은 투박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상공회의소가 2007년 조사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설문에서 정 명예회장이 34.1%로 1위에 오른 것은 이같은 주변인들의 기억과 무관치 않다.

정주영은 고인이 되었지만 기업인 정주영, 인간 정주영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정주영학을 공부하는 젊은 경영학도가 있는 한, 정주영 경영DNA를 체득하려는 후배 경영인들이 있는 한, 정주영 숨결을 느끼고자 추억하는 국민들이 있는 한 그렇다. 2011년 3월 중순. 정주영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영상 기자 @yscafezz>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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