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강운구의 ‘오래된 풍경’으로 만나는 깊고 그윽한 경주
라이프| 2011-04-12 09:54
몸은 비록 잿빛 현대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들은 늘 ‘고도’를 꿈꾼다. 시간도 느릿느릿 흘러갈 듯한 그 아득한 곳을 말이다. 특히 경주의 부드러운 능(陵)과 남산(南山)은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너그러운 선의 왕릉과, 삼국유사의 이런저런 무대들, 그리고 지천으로 돌부처가 자리한 남산까지 신라(新羅)의 도읍을 담은 사진들이 미술관에 내걸린다.

중견 사진가 강운구(70)가 부산의 사진전문 미술관인 고은사진미술관 초대로 개인전을 연다, ‘오래된 풍경-능, 삼국유사, 경주 남산’이란 타이틀로 16일 개막되는 이번 전시는 고은사진미술관이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신관을 오픈하며 여는 신관개관전이다. 고은문화재단(이사장 김형수)은 지난 2007년 말 해운대 중동에 고은사진미술관을 개관한 데 이어, 3년 만에 신관을 또 건립했다. 그리고 이 신관에 40여년간 뚜렷한 자기 세계를 걸어온 사진가 강운구를 초대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신라 능’ ‘삼국유사’ ‘경주 남산’으로 구성된 ‘역사 삼부작’을 선보인다. 이제는 크고 작은 자취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신라, 그리고 경주를 오늘 우리 앞에 내보이는 것.
강운구의 역사 삼부작은 사진집과 단행본으로 출간됐던 것들이다. ‘경주남산’(1987ㆍ열화당),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ㆍ까치글방), ’능으로 가는 길’(2000ㆍ창비) 등이 그것. 그러나 전시를 통해 작품들이 대중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 ‘신라 능’은 경주 시내에 자리잡은 신라시대 왕릉을 촬영한 것으로, 평지에 거대한 봉분을 갖추고 있는 왕릉, 산기슭에 위치한 크고 작은 능들을 담았다. ‘노동동 고분군’과 ‘삼릉’을 촬영한 사진은 의연하면서도 한없이 완만한 왕릉의 선들이 겹겹이 포개지며 아름다운 실내악처럼 다가온다.


‘삼국유사’는 일연(一然) 스님이 기록한 삼국유사 속 역사적ㆍ신화적 장소들을 직접 찾아 이를 렌즈에 담은 사진이다. 또 ‘경주 남산’은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불적(佛蹟)을 찍은 것으로,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불상들은 신라인의 남달랐던 예술혼을 말없이 보여준다. 특히 작가는 이 역사의 현장에 현재성을 더해 ‘살아숨쉬는 역사’로 빚어냈다. 즉 기원전 57년에 세워진 신라를, 그리고 200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가로지르며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 경주와 남산을 두루 담아낸 것이다.

이번에 만나는 강운구의 경주 사진들은 깊고, 그윽하다. 그의 찰진 사진들은 긴 세월을 지나오며 과거 찬란했던 모습이 사라진 채 이젠 스산스런 폐허가 된 고도에, 찬란한 생명의 빛을 부여한다. 마치 천년 전 투명한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추었을 때의 그 눈부신 순간을 재현한 듯하다. 슬라이드 컬러 필름으로 구현한 깊고 섬세한 사진들은 역사의 진실에 대한 작가의 웅숭깊은 통찰력을 차분히 드러낸다.

작가는 “촬영시점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 연작은 ‘오래된 풍경’으로 묶이면서 비로소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이를 통해 동일한 장소(신라, 서라벌)에서 시간의 변화(대한민국, 경주)에 따른 변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칠순을 맞은 강운구는 1966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입사해 동아일보로 옮겼고, 1975년 동아투위 당시 해직됐다.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여러 잡지에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 에세이를 발표해 왔다. 또 지난해에는 직접 쓴 사진에 관한 글과 인터뷰, 토론을 모아 ‘강운구 사진론’(2010ㆍ열화당)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번 개인전을 열 때마다 책을 펴내온 작가는 이번에도 ‘오래된 풍경-능,삼국유사,경주 남산’이란 타이틀로 열화당에서 책을 출간한다. 고은사진미술관 신관에서의 강운구 사진전은 오는 7월 3일까지 열린다. 051)746-0055. 사진제공= ⓒ강운구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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