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이수곤 증권부장]대형 IB 육성 두번의 정책 실기는 없다
뉴스종합| 2011-04-13 10:51
2007년 재정경제부(현재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온 자본시장통합법안(2년 후인 2009년 2월 시행)을 기자들 앞에서 발표하면서 자본시장법이 통과되면 한국도 골드먼삭스와 같은 대형 IB(투자은행)가 가능해질 것이란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의기양양하게 돌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재경부는 은밀히 기자들에게 자본시장법을 언급할 경우 가급적 골드먼삭스 부분은 부각시키지 말아줄 것을 요청해왔다. 표면적으론 금융영역 칸막이 해체가 법의 핵심이라는 것이 이유였지만, 내심으론 자본시장법안 그 자체론 대형 IB 유도가 미흡하고 자칫 시장에 근거 없는 환상만 준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 당시 재경부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자본시장법 시행 2년을 맞는 현재 한국의 골드먼삭스는커녕 특화된 IB마저도 찾기가 힘든다. 결과적으로 법안 마련부터 시행까지 거의 4년여를 낭비한 꼴이 됐다. 애초 정책이 정교하지 못했던 부문은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곱씹어볼 만하다.
먼저 당국은 업무영역을 무너뜨리고 진입제한을 완화하면 자연스레 합종연횡이 생겨 대형화, 전문화될 것으로 봤다. 이는 당시 증권업계가 거의 천수답식으로 브로커리지(주식중개)를 통해 몇 년 반짝 벌면 몇 년 불황은 그럭저럭 연명해나갈 수 있어 오너들이 굳이 회사를 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점을 간과했다.
정책당국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IB 육성에 대한 정확한 스탠스를 잡지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자본시장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돼버렸다.
실기(失機)에는 대가가 뒤따른다. 대형 IB 미비에 따른 금융지원 부족으로 원전 수주 등 해외 대형 딜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국내외 인수ㆍ합병(M&A) 과정에서 주관사들이 대부분 해외업체로 선정됨에 따라 국부와 핵심 정보들이 새나가고 있다.
결자해지라 했던가. 자본시장법 시행 2돌이 지나고야 비로소 법 제정의 주역이었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또다시 나서 대형 IB 육성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한국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게끔 당국이 보다 세밀하고 과단성 있게 나서야 한다.
물론 사람(전문성)과 시스템(인프라)이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덩치(자본금)가 커야 최소한 글로벌 딜에 참여라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형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인데, 먼저 대형화와 민영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게끔 KB지주, 삼성증권 등 시중 금융기관이 대우증권 또는 우리투자증권과 결합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금융위가 검토하고 있는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산은의 IB 부문 통합(대형화)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선 민영화가 안 되고 시너지 효과도 의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업계 재편을 위해 정부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부분이 있다. 하나 제대로 키워 규모의 경제를 만들면 자연스레 이와 경쟁하기 위해 또 다른 대형 IB가 나오게 마련이다.
대부분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을 배출하고 있지만 유독 금융에서만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없는 것은 금융기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당국의 정책이나 의지 부족이란 지적이 있다. 한국인의 금융 DNA가 남달리 탁월하고 IMF 위기를 넘기면서 부실채권 처리 등 IB 경험도 적지 않다. 더 이상의 실기는 한국이 금융후진국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새겨야 한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