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유럽 기하추상의 거장, 모렐레 첫 한국전
라이프| 2011-05-12 06:49
기하학적인 선, 부드러운 선, 휘어진 선.. 갖가지 선(線)들이 면과 운율을 만들며 화폭 위에 세련된 미감을 드리운다. 부드러운 선들도 날이 한껏 서있어, 묘한 긴장감을 준다.

프랑스 기하추상의 거장이자 네온아트의 선구자인 프랑수아 모렐레(François Morellet, 85)의 작품이다. 모렐레의 첫 한국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에서 지난 11일 개막됐다.

오는 6월 19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부제는 ‘Senile Lines’전. ‘노쇠한 선들’이란 뜻이다. 스스로 ‘선의 작가’임을 표방하는 모렐레는 “나의 선이 이제 충분히 늙었다”며 이렇게 명명했다. 그만큼 완숙했다는 뜻으로, 이번이 자그만치 456번째 개인전이니 그럴만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가 생활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회화 대작들이 대거 출품됐다. 또 네온을 이용한 설치작품까지 총 30여점이 한국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모렐레는 국내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권에서는 기하추상을 앞장 서 미술계에 정착시킨 선구자로 명성이 높다. 또 네온 아트를 누구보다 먼저 선보인 그는 반세기 넘게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로 자리하며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모렐레는 회화와 조각을 독학으로 배웠다. 또 30대에 참여했던 GRAV(과학적 방법으로 실험예술을 모색했던 키네틱그룹)를 제외하곤 평생 특정조류에 소속되지 않은채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다른 누구와의 작업과도 다르며, 지극히 개념적이고 논리적이다.

데뷔 이래 ‘회화란 무엇인가’ ‘작품과 관객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질문해온 모렐레는 초창기부터 전통적인 회화의 접근방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즉 제한된 색상과 선, 도형을 이용해 기하학적 패턴과 눈금만이 드러나는 지극히 미니멀한 평면 추상회화를 추구한 것. 따라서 모렐레의 회화는 대단히 예리하고, 이지적인 것이 특징이다.

따뜻하고 흥겨운 그림을 좋아하는 감상자들은 "무슨 그림이 이렇게 딱딱해? 꼭 수학 도면같네"라고 할지 모르나 그는 테잎, 천, 네온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대단히 간결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내놓았다. 한가지 아이로니컬한 것은 그의 그림이 대단히 논리적이며 질서정연해 보이나 실은 무작위의 법칙, 우연에 의거한 법칙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이다. 조형적으로 한치의 빈틈도 없는 듯한 완결성은 사실은 우연성의 산물이란 점이 흥미롭다.

그 백미는 관객을 개입하게 함으로써 완성된 네온작업 ‘관객에 의해 왜곡된 물 위의 반영’이란 작업이다. 6개의 직각으로 교차하는 네온 선을 천정에 설치하고, 그 아래 검은색 액채를 담은 통을 설치한 후 그 액체를 관객이 젓게 해 생긴 이미지로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찾으려 노력한다. 나의 목표는 예측할 수 없고 비규칙적인 숫자들, 예를 들면 전화번호부의 숫자들이나 파이와 같이 영원히 지속되는 숫자들 속 규칙을 기반으로 작업한다"고 밝혔다. 이같이 무작위로 선택된 숫자들을 작가는 캔버스 위 선이 뻗어나갈 각도 등에 대입해, 대단히 예리하고 매혹적인 선과 면을 만들어내는 것. 모렐레는 또 단어놀이도 즐긴다. 작품의 제목을 직접 다는데, 이는 제목이 작품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렐레는 25세인 1950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60년간 작품활동을 해왔다. 카셀도큐멘타(1964년, 네온작업으로 첫 참여)와 파리비엔날레(제3회, 1963년) 등에 초대받으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평생 자유인으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견지해왔는데 "예술작품은 사람들이 스스로 가져온 것들을 먹는 스페인식 술집과 같은 소풍 장소이다”라며 관객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현대 주연화 실장은 "모렐레의 작업은 차갑고 심각한 추상의 영역에 유머와 위트를 불어넣는 요소가 깃들어 감상자를 미소짓게 한다"고 평했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