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소설 한 편 창작하는 무게를 저울에 달면?
라이프| 2011-05-25 09:10
▲엄청난 기록을 보유한 괴짜 작가 조르주 심농

창작의 무게는 몇 그램일까? 그 무게를 직접 달아 본 작가가 있다. 이변, 괴짜, 불가사의, 천재 등 숱한 별명으로 불린 작가 조르주 심농. 최근 ‘매그레 시리즈’의 번역 출간이 시작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는 바로 그 작가다.

조르주 심농은 여러 가지 믿기 어려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0일 만에 한 권씩, 평생 400권의 소설을 써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써낸 작품들이 모두 명작급이었다는 것. 그래서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찬탄이 이어졌다. 알베르 카뮈는 “심농을 읽었기에 ‘이방인’을 쓸 수 있었다”고 고백했고, 마르케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라고 칭송했고, 헤밍웨이는 “심농 전집이 있다면 장마에 갇혀 있어도 걱정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문학평론가 발터 베냐민은 “심농의 새 소설이 나올 때마다 얼른 사서 읽는다”고 말했다. 이런 대가들의 찬사를 이끌어낸 작품들이 다름아닌 ‘추리소설’이라는 것도 의외다.

무려 75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대표작 ‘매그레 시리즈’는 5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5억 명의 독자를 얻었다. 15편 이상의 극장 영화로, 300편 이상의 TV 영화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2008년 독일의 유력지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 주에 한 권씩 연속 75주 동안 연재 비평 기사를 내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두 그의 인기를 방증하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들이다. 무엇이 이런 인기를 만들어낸 것일까? 바로 ‘창작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창작의 무게는 하루 800그램

“하루에 800그램. 테레자(심농의 연인)가 실험을 했다. 그녀가 창작을 전후해 내 몸무게를 달았다. 하루당 800그램이 줄었다.” 그는 창작 기간에는 “방해 금지”라는 팻말을 문밖에 걸고 두문불출하며 질주하듯 작품을 썼다. 한 작품을 대략 10일 만에 썼다니 적어도 8킬로그램이 한 권의 소설 속으로 사라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작품을 마치고 나면 그는 탈진 상태가 되었다. 그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부담 없는 길이를 갖게 된 것도 한달음에 쏟아낼 수 있는 생명 에너지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쓸 때 논스톱이어서 그런지 읽을 때도 논스톱이다. “순수한 소설은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독자가 중간에 멈췄다가 다음 날 다시 읽을 수가 없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어느 날 저녁에 초반부를, 사나흘 후에 중반부를, 일주일 후에 마지막 부분을 읽는 게 가능이나 한가? 내 소설은 하룻저녁에 읽도록 쓰였다. 고전 비극이 하룻저녁에 관람되도록 쓰였듯이”

‘수상한 라트비아인’ 등 4권을 필두로 ‘매그레 시리즈’ 한국어판 출간이 시작되었다. ‘이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작가, 조르주 심농의 작품이 한국에서 과연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

▲정통 유러피언 스릴러, 한국에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까?

우선, 전체 75권이나 되는 시리즈를 과연 다 출판할 수 있을까? 한국어판을 출판하는 열린책들은 매달 20일로 날짜를 못박고 2권씩 새 책을 내놓으며 대장정을 이어 간다는 계획이다. 기다리고 있던 마니아 독자가 적지 않아서 75권 완간 도전이 성공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둘째, 한국에서도 매그레라는 인물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시리즈의 주인공 매그레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키 180센티미터, 체중 110킬로그램. 본능적이고,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퉁명스럽고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이 못 된다. 범죄보다는 범인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범인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해하려 든다. 그리고 범인을 항상 잡는 것도 아니다.

셋째, 트릭과 자극적인 양념으로 가득한 영미 스릴러에 길들여진 한국 독자들이 삶을 파고 드는 정통 유러피언 스릴러에 어떻게 반응할까? 싱겁다고 느낄까, 깊이가 있다고 느낄까?
관전하면서 한 권쯤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초판을 사는 게 좋겠다. 수집욕을 자극하는 금속제 책갈피가 초판에만 선물로 붙어 있다. 하지만 조심할 일이다. 매그레 시리즈를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문학 기자 틸만 슈프레켈젠은 “언제든 내가 그만 읽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으니까”라고 장담하며 시작했다가 결국 75권을 다 읽고서야 멈췄다.

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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