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정권 실세 기다려 악수하고, 대역 시켜 전화통화 하고…”
뉴스종합| 2011-06-15 09:52
‘말’로만 이뤄지던 사칭 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정권 실세등과의 친분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 전 정권 실세를 사칭하며 전화통화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정권 실세의 일정을 미리 입수, 예약해둔 식당에 따라 들어가 아는 척 하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연극’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들이 쳐둔 ‘악마의 덪’ 에 걸려 수억원을 뜯긴 뒤에야 땅을 치고 후회한다.

▶실세 기다려 ‘아는 척’ 연극...대학총장도 속아=황모(55)씨가 서울소재 대학 총장을 지낸 K 교수를 속인 수법은 한편의 연극 같았다. 2008년 지인의 소개로 김씨를 만난 황씨는 K 교수가 모 단체 이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권 실세와 중학교 동문이어서 잘 아는 사이다. 인사청탁을 해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했다.

이후 모 장관의 일정을 입수, 12월께 그가 한 식당에 온다는 사실을 확인한 황씨는 그 옆방을 예약한 뒤 K 교수를 데려가 식사를 하다가 장관을 불러 아는체 하며 친분을 과시하는 ‘연극’까지 하며 K 교수를 안심시켰다. 이러한 연극에 속아 넘어간 K 교수는 황씨에게 8차례에 걸쳐 1억 6000만원을 건네주며 인사청탁을 하다 3년이 지나도록 뜻대로 되지 않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5일 황씨에 대해 사기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황씨와 모 장관은 중학교 동문이긴 하나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며 “황씨가 고위직을 들먹이며, 식당서 만나 악수를 청하는 등 연극을 해 K 교수를 완전히 속여넘긴 사기사건”이라 설명했다.

▶전직 대통령, CIA 들먹=그런가 하면 전 前 대통령을 들먹이며 사기를 부린 사람도 있다.

부산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는 이모(49ㆍ여)씨는 부산소재 모 운동부 대학 감독인 P(56)씨에게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이라며 접근했다. 이씨는 가짜 장세동 전 대통령 역할을 할 사람까지 섭외해두고는 P 씨 앞에서 전화통화를 자주하며 P씨를 속이고, 호텔 운영에 자금을 투자하면 몇백배에 이득을 주겠다고 속여 57차례에 걸쳐 1억 5000만원을 뜯어내다 경찰에 붙잡혔다.

미 CIA(중앙정보국) 국장, 국정원 직원등을 사칭한 사기꾼도 있다. 임모(54ㆍ금융컨설턴트)씨는 지난 2008년, 마포의 한 커피숍에서 A(56)씨를 만나 “지금은 CIA 한국지부 국장인데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비밀자금을 검열하고 있다”며 “역대 영부인의 자금도 관리하고 있어서 1억원을 주면 10억원을 돌려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봄, 김씨로부터 2억원을 받은 뒤 김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독촉하자 액면가 1000억원짜리 위조 수표 10장을 담보로 주기도 했다. 그는 2005년에도 모 건설사 대표에 국정원직원을 사칭해 접근, 약 2억원 가량을 챙긴 ‘전문사기꾼’ 이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정권실세등을 거론하며 사기를 치는 것은 사기꾼들의 전통적인 수법이었지만, 최근에는 말로만 실세를 거론하는게 아니라 우연을 가장해 만나 친분을 과시하거나 가짜 실세를 만들어역할 연기를 시키는 등 ‘연극’을 통해 신뢰감을 주고 금품을 뺏는 형태로 진화했다”며 “결국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욕심’을 내다 당하는 것인 만큼 불필요한 욕심을 자제하고 정도를 걷는것만이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지름길일것”이라 조언했다.

<김재현 기자 @madpen100>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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