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마치 한 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양립할 수 없는(incompatible)’ 요소가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기회와 자격을 주는 게 원칙이라면, 자본주의는 자본의 크기에 따라 기회와 자격을 주는 게 원칙이다. 정치적 선거에서는 재산 유무와 관계없이 1인 1표이지만, 주식회사의 의결권은 자본 참여 정도에 따라 1인이 1표 이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다만 자본주의에서도 공적 기회에 대한 접근에는 동등한 조건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바탕에는 민주주의적 원칙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내로라하는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동시에 법정에 서게 됐다. 해당 증권사들이 ELW(주가연계워런트) 관련 고액 초단타 매매자들인 ‘스캘퍼(Scalper)’에게 더 빨리 거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게 ‘특혜’인지가 사건의 핵심이다.
증권사 입장은 수익기여도가 높은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업계의 오랜 관례라는 입장이다. 반면 기소를 결정한 검찰의 입장은 10분의 1초 사이에도 투자 성과가 크게 엇갈릴 수 있는 ELW 시장에서 증권사들이 스캘퍼들에게만 일반 투자자들이 거쳐야 할 내부 ‘방화벽’을 건너뛸 수 있도록 해준 게 문제다. 특정 투자자에게만 거래 속도를 다르게 해 수익확률을 높인 것은 공적 기회에 대한 동등한 접근 조건이 아니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논리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법원 판결의 쟁점은 ‘투자자→증권사→거래소’로 이어지는 거래 단계에서 ‘투자자-증권사’의 단계가 동등한 접근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공적 영역인지, 증권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조절할 수 있는 사적 영역인지가 될 듯하다.
특히 이번 소송 결과는 점차 커지는 고액 자산가 시장과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과 관련해 의미가 크다. 고액자산가,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은 증권사 수익에 기여하는 정도가 큰 만큼 일반 고객과 차별화된 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소송 결과는 향후 고객에 대한 차별화된 서비스의 한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업계의 고민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될 법률 조문을 보자. 부정거래행위를 금지한 자본시장법 178조 1항 1조에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또 금융투자업자의 신의성실 의무를 규정한 동법 37조 2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삼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이해상충을 규정한 동법 44조는 투자자 간 이해상충이 발생할 때는 이를 미리 해당 투자자에게 알리거나 해소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매매, 그 밖의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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