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을 하는 대리기사와 언쟁을 하다가 어쩔수 없이 음주운전을 하게 된 여성 운전자의 자동차운전면허 취소는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2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방송국 프리랜서 PD인 K(여)씨는 서울 성산동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뒤 귀가하기 위해 새벽 1시경 대리운전업체를 통해 대리기사 A씨를 불렀다.
운전대를 잡은 A씨는 그러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면서 치근덕거리기 시작했고, 화가 난 K씨는 차를 세울 것을 요구하고 대리기사비용도 주지 않겠다며 다퉜다.
문제는 실랑이 끝에 대리기사 A씨가 서울 서교동 사거리 편도4차로 중 2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세워두고 차에서 내리면서부터다. 차에서 내린 A씨는 인도로 걸어 나가버렸고 졸지에 음주상태의 K씨와 차량만 도로상에 남게된 것이다.
새벽2시경 통행량이 적은 심야시간대에 속도를 내던 다른 차량들은 멈춰선 K씨의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사고발생을 우려한 김씨는 결국 비상등을 켠 채 약 30미터 가량 직접 차량을 운전해 갓길에 주차했다. 주차를 마친 K씨는 아직 근처에 있는 B씨를 보고 대리기사의 횡포를 고발하겠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대리기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K씨는 오히려 자신이 혈중알콜농도 0.151%의 음주운전으로 단속되는 ‘억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에 면허가 취소된 K씨는 “대리기사가 도로상에 차를 두고 간 긴급 상황에서 사고발생을 피하기 위해 한 음주운전에 대해 면허취소는 부당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K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박상현 판사는 “음주운전을 피하기 위해 부른 대리기사가 오히려 원고의 음주운전을 유도했고, 통행량이 적은 심야에 차량속도가 빨라 사고 발생 위험이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119 신고나 주변 운전자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었다”며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 불과 30미터 정도를 음주운전한 것은 동기 및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어 운전면허 취소는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원고승소 이유를 밝혔다.
이어 “원고는 운전면허 취득 이후 15년간 1회의 주차위반 전력만 있고, 방송프로그램의 프리랜서 PD로서 운전면허의 필요성이 큰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오연주 기자 @juhalo13>o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