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의회가 29일 국가부도를 막기 위한 긴축안을 대규모 폭력 시위 속에 가결시키면서 일단 파국의 한고비는 넘기게 됐다.
이날 찬성 155표, 반대 138표에 기권 5표로 긴축안이 가결되고 당초 5명이나 반대 입장을 보였던 집권 사회당(PASOK)에서는 소속의원 1명만이 반대표를 던진 후 출당 조치당해 30일 예정인 긴축시행안 표결도 가결될 전망이다.
유로존 금융시장은 안도했지만, 이번 긴축안 가결은 7월 EU/IMF의 구제금융 5차분 120억유로를 지급 못받아 올여름에 디폴트에 빠지는 사태를 막았을 뿐 그리스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여름 위기탈출=그리스가 30일 긴축안 시행안까지 무사히 통과시키면 오는 7월 3일 그리스 대책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는 EU/IMF 공동의 기존 구제금융 5차분 120억유로 중 EU가 내야 하는 87억유로를 지급할 전망이다. IMF도 다음주 안에 나머지 33억유로를 지급키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유로존 회의에서는 1200억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민간 채권자에 대한 자발적인 국채 만기 연장 방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부가 자국 민간은행들의 합의를 도출한 후 유럽 은행들에 제시한 이른바 ‘그리스판 브래디 채권’ 방안은 민간 채권 보유자들의 만기 채권의 30%만 현금으로 주고 나머지 50%는 30년물 그리스 국채, 20%는 EU 재정안정기금(EFSF) 등이 보증하는 특수목적법인(SVP)의 채권으로 차환하는 방식이다.
독일 정부도 자국 은행 관계자들과 협상에 들어가면서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에 따라 3일 회의에서 민간 채무조정을 통한 감축 300억유로, 그리스의 국유자산 매각 300억유로에 EU와 IMF의 추가지원 600억유로 등을 합쳐 3년간 총 1200억유로의 2차 구제 금융의 골격이 나올 것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는 일단 3년 동안 부도위기는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신평사 디폴트 처리 위험=하지만 국제 신평사들이 EU의 채무재조정에 걸림돌이다.
유럽 수뇌부가 섣불리 그리스 채무조정에 나섰다가 월가의 신평사들에 의해 그리스가 부도처리되는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29일 피치는 민간 채권자들이 자발적으로 롤오버해도 디폴트로 간주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천명했다. 월가 신평사들이 여전히 EU에 서슬 퍼런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0일 로렌조 바니 스마기 유럽중앙은행(ECB) 이사가 신평사들의 디폴트 처리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면서 유럽 정부 관계자들에게 신중한 채무 조정 협상을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불안한 가을=한편 EU의 채무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져도 이번 사태가 그리스의 정치적 혼돈으로 가을에 재연될 것이란 관측도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리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오는 10월께 실시하려 했던 정치개혁을 위한 국민투표가 이번 대규모 반대 폭력 시위로 여의치 않아 보이고 오히려 가을에 정권 연장을 위한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판드레우 총리 정권이 간신히 살아남아도 올가을에 빚어질 혼돈에 IMF가 구제금융 지급을 보류하면 이번 5월의 사태가 재연된다.
이번 사태도 IMF가 지난 4월 그리스가 내년 3월 만료되는 기존 구제금융의 종료 후에 IMF가 지급한 구제금융의 상환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5차분 120억유로 지급을 미루면서 시작됐다. IMF와 EU는 9월에도 기존 구제금융에 따른 6차분 80억유로 지급을 앞두고 그리스에 대한 실사단 점검을 거치는데 여기서 5월과 똑같은 이유로 지급을 미루는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고지희 기자/j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