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경매사는 왜 스타들의 미술품에 눈독 들일까?
라이프| 2011-07-05 12:25
<이영란 선임기자의 아트 & 아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스타는 죽어서 ‘컬렉션(collection)’을 남긴다. 그 컬렉션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스타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빨려들 것 같은 고혹적인 눈동자를 지녔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ㆍ1932~2011). 그는 지난 3월 타계했지만 올 하반기엔 그의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할 전망이다. 테일러가 소장했던 수천여점의 보석과 명품 의상,가구 액세서리, 미술품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하이라이트’만을 모은 특별 전시가 모스크바, 런던, 파리, 두바이, 홍콩, 제네바, 로스앤젤리스 등 7개 도시에서 오는 9~11월 순회되기 때문이다.

그리곤 수집품은 뉴욕으로 옮겨져 오는 12월 록펠러센터 특별전시장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전시된 후 크리스티 뉴욕 경매장에서 장장 나흘간 경매에 부쳐진다. 수집품이 대체 얼마나 많으면 7개 도시를 순회하고, 경매 또한 나흘이나 개최되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더구나 테일러가 수집했던 인상파 작품들은 별도로 내년 2월 런던 크리스티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테일러가 60여년 넘게 모은 방대한 보석및 아트 컬렉션을 확보한 크리스티는 ‘대어(大魚)를 낚았다’며 희희낙락하는 분위기다. 테일러만큼 스타성이 뛰어나고, 수집품 또한 초고가인 경우는 흔치 않아 이번 이벤트를 ‘대대적인 지구촌 축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작업에 한창이다.

생전에 다이아몬드를 유난히 좋아한 데다 결혼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여러 차례 했기에 테일러의 다이아몬드 컬렉션은 그 어떤 스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특급’으로 평가된다. 경매에는 리처드 버튼이 선물했던 다이아몬드 반지 등 각별한 스토리가 담긴 보석들과 발렌티노, 베르사체 부티크에서 제작한 우아한 드레스들이 함께 나온다. 또 부친이 아트딜러였던 테일러는 반 고흐의 풍경화를 비롯해 점당 수백억, 수십억원을 너끈히 호가하는 인상파 작품도 다수 보유 중이어서 경매의 낙찰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 경매 외에도 크리스티는 이미 일급 스타들의 수집품 경매를 여러 차례 개최해 이 부문에서 경쟁사인 소더비를 압도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지난 2009년 파리에서 열렸던 ‘패션의 제왕’ 이브 생 로랑 컬렉션 경매.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등 20세기 서양미술 거장의 작품을 포함해 732점이 출품돼 총 3억7390만유로(약 5800억원)의 낙찰액을 기록하며 ‘세기의 경매’로 명명됐다. 이는 스타의 단일 경매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경매에 앞서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렸던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 전시회 또한 4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며 대 성황을 이뤘다.

또 하버드의대를 나와 ‘쥬라기공원’ ‘해적의 시대’ ‘넥스트’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1942-2008)의 수집품 경매(2010년)도 큰 화제를 뿌렸다. 크라이튼은 젊은 시절부터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화가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그가 죽자 데이비드 호크니,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크리스티를 통해 팔려나갔다. 컬렉션 목록에는 제스퍼 존스, 피카소 등 정상급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포함돼 있었다. 이 밖에 메릴린 먼로, 말런 브랜도, 제임스 브라운(가수), 영국 왕실의 마거릿 공주 등의 수집품 경매도 크리스티가 진행한 바 있다. 


한편 소더비의 경우 엘튼 존의 의상과 장신구를 경매에 부쳤고, 2009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G. Versace 1946~1997)의 그림 및 조각, 가구 경매를 진행했다.

지구촌 주요 경매사들은 최근 들어 유명 인사의 수집품 경매를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스타 및 유명 인사들의 아트 컬렉션은 엄청난 화제를 뿌리는 데다, 고가 작품일 경우 낙찰액 또한 만만찮아 경매사로선 ‘회심의 찬스’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살아 있는 스타들의 컬렉션도 자주 경매에 부쳐지곤 한다. 올리버 스턴, 휴 그랜트, 앨튼 존의 경우 자신의 수집품을 내놓아 톡톡히 재미를 봤다. 또 브래드 피트, 우디 앨런, 마돈나, 저스틴 팀버레이크, 제인 폰다, 케빈 스페이시, 데이비드 보이 등 예술품을 수집하는 스타들은 이제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패션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질 샌더 등도 미술애호가이자 컬렉터다. 특히 브래드 피트는 한국작가 이헌정과 장진의 도예작품을 수집했으며, 우디 앨런과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한국 출신의 작가 이명호(Myoung Ho Lee, b.1975)의 사진작품을 수집한 바 있다. 스타와 유명인사들이 이렇듯 미술작품 컬렉션에 열을 올리니 경매사 스페셜리스트들의 발걸음 또한 바빠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티 한국사무소의 신수정 팀장은 “유명 경매사들은 막강한 네트워크를 갖춘 노련한 스페셜리스트들이 스타와 유명 인사를 특별 관리하고 있다”며 “해외에선 인기 스타들이 아트컬렉션을 통해 이미지 관리도 하고, 자산도 늘리기 때문에 스타의 수집품 경매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같은 예술품이라도 스타와 유명 인사가 수집한 작품은 ‘소장 기록’ 측면에서 가치가 더해져 한결 고가에 낙찰되곤 한다. 따라서 경매사들은 ‘예술 지향형 스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특히 엘튼 존처럼 방대한 아트 컬렉션을 보유한 뮤지션은 ‘관리 대상 1호’다. 일찌기 앤절 아담스, 로버트 메이플서프 등의 사진을 수집해 유명해진 엘튼 존(한국사진가 배병우의 사진도 구입했다)은 데미안 허스트, 앤디 워홀, 프란시스 베이컨, 줄리앙 슈나벨, 장 미셸 바스키아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여러 점 컬렉션했다. 또 안경 시계 액세서리 등도 엄청나게 보유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혈 수집광’이다.

지금까지 경매업계에선 ‘3D(이혼, 죽음, 빚)로 인한 경매 의뢰가 가장 많다’는 게 정설이었으나 이제는 ‘스타’라는 항목을 그 위에 더 추가해야 할 시대가 마침내 온 셈이다. ‘자신의 남다른 감각을 드러내기에 아트 컬렉션만한 게 없다’고 믿는 스타들이 늘어나는한 일반 대중은 앞으로 보다 더 자주 스타들의 수집품 경매를 보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christie’s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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