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는 전자책 리더기인 ‘쿨러(Cool-er)’와 검색엔진 ‘쿨(Cuil)’이 차지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발음이 혼란스러워 ‘퀼(quill, 깃)’ 또는 ‘컬(cull, 도태)’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구글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큰소리쳤지만 검색 속도나 정확도 면에서도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소비자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4위는 지난 해 미국에서 출시된 삼성전자의 ‘스마일리:)’라는 이름의 제품이다. 눈을 의심할 것 없다.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도 이름의 일부가 맞다. 이 엉뚱한 이름의 휴대전화는, 이름과는 달리 소비자를 ‘미소짓게 할’ 장점이 없다며 혹평 받았다.
3위는 펜탁스의 DSLR 카메라 ‘*이스트(*ist)’로 도스 시절의 쉘 스크립트를 활용해 기발한 네이밍을 선보였다. 하지만 2006년 시장에서 사라지는 불운을 맞았다. 2위로는 ‘음악옷장’이라는 투박한 뜻을 담은 휴대용 미디어플레이어 ‘엠로브(m:robe)’가 뽑혔다.
독일 트랙스토어사의 ‘아이비트 블랙스(iBeat Blaxx)’가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제품의 이름을 해석하면 ‘나는 흑인을 때린다’가 된다. 트랙스토어 측은 제품의 이름이 영어로 무엇을 뜻하는 지를 뒤늦게 알고나서 브랜드 개발 책임자를 해고하고 ‘블랙스’로 이름을 바꾸는 해프닝을 벌였다.
“보고있나, 내 이름?” IT 제품 이름에 철학이…
예비 부모들에겐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만큼 고민스러운 일이 없다. 세련된 이미지를 위해 이름을 바꾸거나, 인생 역전을 꿈꾸며 개명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름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기도 한다.
새 전자제품이나 서비스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때로는 이름이 제품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의 경우 밋밋한 이름은 이용자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쉽지 않다. 별 뜻 없어 보이는 제품명도 대개는 ‘삼고초려’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아이팟, 아이폰 등 공전의 히트작을 내며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애플’은 IT 업체로서는 생소한 이름을 걸고 출발했다. 지금이야 국내외 뉴스에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니 어색함이 없지만, ‘사과’ 라는 기업명에서 첨단 기술을 떠올리긴 무리가 있다.
애플사의 이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탄생 과정이 어찌됐건 이름은 의외의 효과를 거뒀다. 과일 중에서도 흔하디 흔한 ‘사과’이다 보니 한번 들으면 기억하기 쉬운 것은 물론, ‘왜 하필 애플일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다. 베어문 사과 모양의 로고는 ‘뉴튼의 사과’를 떠올리게 해 혁신적인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기업명을 비롯, IT 제품과 서비스명을 찬찬히 살펴 보면 저마다 나름의 이름 짓기 방식이 있다. ‘애플’처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품명을 활용해 친숙한 이미지에 승부를 거는가 하면, 우주 과학이나 로봇 등과 관련된 이름으로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름만 듣고도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직관적인 네이밍(이름 짓기)’이 대세다.
▶‘초콜릿’, ‘망고’는 먹는 거 아닌가요?=3~4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맛있는’ 이름을 가진 일반폰(피처폰)이 전성기를 누렸다. 정확히 말하면 정식 이름이 아닌 ‘펫네임’(애칭)이다. 매끈하고 네모 반듯한 외관과 부드러운 파스텔톤 색상이 각각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연상케 하는 이들 제품은, 개성을 중시하는 10~20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초콜릿폰과 아이스크림폰은 감성적 제품 네이밍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 바람을 일으킨 ‘블랙베리’도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신선한 제품명과 쿼티 자판을 탑재한 깜찍한 외관으로 호감을 샀다. 제조사인 리서치인모션(RIM)은 즐거움과 평화로움을 주는 단어를 검토하던 중, 자판의 버튼이 과일 씨를 닮은 것에 착안해 스트로베리, 멜론 등의 이름을 떠올린다. 결국 검은색 단말기와 어울리는 ‘블랙베리’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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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프로그램을 돌아가게 만드는 모바일 운영체제(OS)야말로 ‘맛있는’ 이름을 독차지 하고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는 디저트 이름을 따 각 버전의 코드명을 만들었다. 1.5버전 컵케익(Cupcake), 1.6 도넛(Donut), 2.2 프로요(Froyo), 2.3 진저브레드(Gingerbread) 등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의 윈도우폰7도 ‘망고’라는 이름의 새 버전을 선보였다.
이처럼 냉장고 한 켠에서 볼 수 있는 식품의 이름을 내건 제품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전자 제품을 한결 친숙한 이미지로 만든다. 또 안드로이드 OS처럼 시리즈로 이어질 경우, 다음 버전엔 어떤 식품명이 활용될 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미래지향적 제품명으로 이미지 ‘UP’=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는 그리스어로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SF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과 비슷한 로봇을 뜻한다. 안드로이드는 세련됨이 뭍어나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이름으로부터 나온 ‘드로이드’ 로봇 캐릭터도 인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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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스마트폰 중 하나가 삼성전자의 ‘갤럭시(Galaxy)’ 시리즈다. 삼성전자는 ‘애니콜’이라는 노후한 브랜드를 버리고, 새 플랫폼인 ‘안드로이드’와 어울리는 ‘갤럭시’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 ‘은하계’를 뜻하는 ‘갤럭시’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제품에 투영하는 동시에, 광활한 우주처럼 다양한 기능과 넓은 활용도를 강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첨단 과학 분야와 관련된 이름은 참신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제품의 고급화 전략에도 일조한다는 평가다.
▶“우린 남들과 달라”기업 철학을 담다=애플은 ‘아이(i)’ 시리즈로 잇달아 홈런을 치고 있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대명사 격으로 인정받으면서, 아이(i) 시리즈는 애플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아이(i)는 ‘인터넷(internet)’ 외에도 ‘개인(individual)’, ‘지시(instruct)’, ‘알림(inform)’, ‘영감(inspire)’ 등 다의를 품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들은 아이팟과 아이폰의 ‘아이(i)’를 ‘나(I)’, 또는 ‘정체성(identity)’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애플사의 혁신적인 이미지와 ‘개인’ ‘인간’에 초점을 둔 기업 철학이 제품에 투영돼 소비자들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들에게 ‘아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닌 스마트 시대의 아이콘과도 같다.
대만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HTC도 아이(i) 시리즈처럼 일관성 있는 제품명을 선보여 왔다. ‘디자이어(desire, 열망)’, ‘인크레더블(incredible, 놀라운)’, ‘센세이션(sensation, 돌풍)’을 비롯해 국내 출시를 앞둔 3D폰 ‘이보(evo, 진보)’까지 대체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단어가 제품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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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실패 목표율 95%를 달성하라”는 HTC의 기업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생산한 제품 중 95%가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5%의 성공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손끝으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바일 컨버전스”에 대한 관심을 뚝심있게 밀어부친 결과, HTC는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업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듣는 순간 느낌이 팍…”=지금은 일반명사가 된 ‘스마트폰’도 특정 휴대전화의 제품명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기존의 통화 기능을 넘어 인터넷, 업무 등의 기능을 가진 ‘똑똑한’ 휴대전화를 가리킨다. 1998년 세계 두 번째 스마트폰인 ‘노키아9000’의 상품명 옆에 ‘스마트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던 것을 계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스마트’라는 개념은 최근 다양한 분야로 확산돼 ‘스마트 TV’ ‘스마트 패드’ ‘스마트 자동차’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마트’와 비슷한 맥락에서 IT 분야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바로 ‘클라우드’다. 웹상에 데이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어디에서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서비스다. 거대한 ‘구름’같은 웹 공간에 접속해 일부를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유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twitter)’는 IT 업계에서 가장 직관적인 서비스명으로 꼽힌다. ‘지저귀다(twitter)’ 라는 뜻을 담은 140자 단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지저귀듯’ 수다를 떤다. 짧은 글 하나에 수십 건의 답신이 오고 퍼뜨리기가 일어나는 모습은, 새 한 마리의 지저귐에 수많은 새가 일제히 반응하는 모습과도 닮았다.
이 외에도 애플의 맥 운영체제는 ‘레오파드’, ‘라이언’ 등 날렵한 고양이과 동물의 이름을 통해 빠른 구동속도를 강조했으며, ‘테이크 야누스’(로마신화 속 두 얼굴의 신 이름에서 화면분할 기능 연상), ‘베가 레이서’(1.5GHz 듀얼코어의 빠른 스피드 강조) 와 같은 휴대전화도 직관적인 제품명으로 시선을 잡는다.
향후 선보일 IT 제품과 서비스도 직관적인 이름이 주류를 이룰 전망이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처럼 출시 초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든 제품군의 경우,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제품의 기능을 쉽게 드러내는 브랜드가 요구된다고 업계는 조언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