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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 쇼핑몰 CEO 된 24살 새터민 여대생, 승설향씨
뉴스종합| 2011-09-15 10:28
건국대 경영대학 경영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승설향(24)씨는 3년 전 남한으로 온 북한 이탈 새터민다. 앳된 얼굴의 평번한 대학생이지만 승 씨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경영학도’답게 5개월의 준비 끝에 최근 아동복 온라인 쇼핑몰 ‘미키엘’(www.mikyel.com)을 창업하고 당찬 여성 CEO로 변신했다. “처음 해보는 창업이어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자신 있어요. 만화 캐릭터나 화려한 색으로 멋을 내는 기존의 아동복과는 다른 옷들을 선보일 겁니다.” 그녀의 온라인 사업은 ‘승설향 쇼핑몰’이라는 이름으로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있다.

승 씨는 5개월 전, 젊은 탈북민의 자립을 돕는 한국청년정책연구원에서 두 달 반 동안 탈북대학생들을 위한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을 계기로 함께 수업을 들었던 탈북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나섰다. 그곳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어, 500여만 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북한이탈주민센터,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의 도움으로 서울 답십리에 사무실도 냈다. 밤새 책을 봐가며 전자상거래 절차와 엑셀, 포토샵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익혀 쇼핑몰을 구축하고, 며칠 밤을 남대문 시장을 훑어가며 쇼핑몰의 컨셉에 맞는 아동복을 찾았다. 난생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서툰 부분이 많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승 씨는 “어렵게 시작했으니 꼭 성공하고 싶다”며 “할머니에게서 배운 바느질 솜씨도 살려서 조만간 직접 아동복을 만들어 팔 생각”이라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 그것도 패션 쇼핑몰을 하게 된 데는 함께 탈북한 외할머니 김복남씨(가명ㆍ74)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북한에서 미싱 직원 40여 명을 두고 양복집을 운영할 정도로 유명한 재단사였다. 정부가 운영하는 양복점에서 재단사로 30년 넘게 일했다. 일손이 모자랄 때마다, 할머니 일을 돕다 보니 승 씨 역시 혼자서 모자 정도는 너끈히 제작했다. 당시 가게 수입은 하루 평균 14만원의 매출(북한 돈/쌀 70Kg을 살 수 있는 금액)을 올릴 정도로 벌이가 괜찮았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둘이 북한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승 씨. 하지만 고교 졸업 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승 씨는 북한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좀 더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외할머니를 설득해 2006년 12월 탈북을 감행,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볜으로 갔고, 2008년 4월 남한으로 왔다.

한국 사회에 빨리 정착하는 길은 돈을 모으는 것이라 생각했다. 식당 종업원과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고, 평양민속예술단에 들어가 전국을 돌며 공연도 했다. 외할머니 역시 재봉틀을 다시 잡았다. 승씨는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일만 하다 보니 나는 대체 무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2009년 말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해 올해 건국대 경영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했다.

남한 생활에 적응하랴, 대학에서 공부하랴, 쇼핑몰을 운영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승씨는 “남한에서 공부하면서 취업난에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경영학 공부와 함께 창업에 뛰어든 승씨는 새벽 늦게까지 남대문시장 이곳 저곳을 훑으며 아동복을 고른다. 색깔과 디자인은 물론 바느질까지 꼼꼼히 살피며 아동복을 고른다. 처음엔 아동복의 사이즈조차 잘 몰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옷을 한 번에 척 보면 코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동복을 고르는 ‘눈매’가 늘었다. 아동 모델을 직접 섭외하고 촬영도 한다. “가능한 어머니 입장에서 옷을 고르기 위해 노력해요. 실용성과 활동성에 스타일까지 고려한 아동복을 전문으로 다뤄요. 예쁜 옷은 아무래도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더 가거든요.”

평소 자주 가는 단골 아동복 도매상에 들러 사업에 관한 자문도 받고 일을 도와주며 물건 포장도 배운다. 밤늦게까지 쇼핑몰 구축과 운영방법을 공부하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남대문 상인들도 많은 것을 도와준다. 승씨의 외할머니는 남한 땅에서 쇼핑몰을 창업한 손녀가 대견하다. “정말 장하고 기쁘지요. 쇼핑몰 계획했다는것 자체가 엄청 기뻐요.” 외할머니는 직접 손으로 만든 옷과 가방을 손녀의 쇼핑몰에서 팔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승 씨도 언젠가 직접 만든 아동복 팔고 싶어 외할머니에게서 제단 기술을 배우고 있다. 아동복 쇼핑몰 창업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한국청년정책연구원으로부터 또다른 사업 프로그램에 도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남한에 와서 도전이라는 게 중요하구나, 하면 되는구나 하는 점을 배웠어요.” 승씨는 “제 이름의 브랜드 옷을 만들고 싶어요. 나아가 북한 아동들에게도 제 브랜드 옷을 제공해 주고 싶어요”라며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남대문시장으로 달려갔다.

<이태형기자 @vmfhapxpdntm>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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