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발끈했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19일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데 대해 “정치적 동기가 많이 들어간 고약한 평가”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듯 S&P의 신용등급 평가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된다. S&P는 “베를루스코니 연정 내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국가부채 문제에 늑장 대응을 보인” 점을 강등의 이유로 들었다. 어쩌면 S&P는 이탈리아 국가부채 문제보다 각종 추문에 휩싸여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이탈리아의 가장 큰 악재로 평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신용등급 강등이란 위기를 맞은 날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위증 혐의로 밀라노 법정에 들어섰다. 외신들은 법정에 출두하면서 반대자들의 퇴진요구 속에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을 게재했다. 비슷한 시간에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과 주고받은 통화내용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외신은 “사무실 밖에 11명의 여성이 줄지어 서 있지만 아쉽게도 8명밖에 관계를 갖지 못했다”며 “총리 업무는 파티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라는 통화내용을 공개, 그가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와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보면 ‘기이한 분위기’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섹스 스캔들이 터져나오는 와중에서도 오뚝이처럼 버텼던 그의 운명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이탈리아 부유층과 재계가 세금 인상 등에 반대하고 있고, 추문에도 아랑곳없이 그를 지원했던 연립정부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재정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자산이 약해지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성매매, 탈세, 뇌물공여 등 수많은 재판에 계류돼 있는 상황에서 안팎의 거대한 도전에 맞서 예전처럼 ‘별일 없이’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기업의 소유주, 명문 축구클럽 AC밀란의 구단주, 이탈리아 3위의 부호, ‘스캔들의 종결자’란 얘기가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스캔들 메이커에 탄핵 시도에도 끄떡없이 세 번째 총리를 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의 운명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분위기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