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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기, 다른 선택’ 부산지역 대표적 강성노조 ‘S&T대우’과 ‘한진중공업’
뉴스종합| 2011-09-28 13:48
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10개월 째 장기화되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제5차 희망버스’가 다음달 8일 부산으로 향할 전망이다. ‘희망버스’를 추진 중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측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집회장소나 규모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지역 여론은 희망버스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또다시 극심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국회 청문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한진중공업 문제는 부산이 안고 있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12월 노조의 총파업 선언 이후 열달 째로 접어든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조의 ‘노사정 간담회’ 불참선언과 새집행부 선출 등의 문제로 노사간 협의가 잠정 중단돼 추후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최종 협상이 진행된 지난 8일 사측은 ‘2년 후 무조건 재고용’안을 노조에 제시했지만 노조는 ‘6개월 후, 조건없는 재고용’을 주장하며 향후 ‘노사정 간담회’ 불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추석전 협상타결을 기대했던 분위기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처럼 협상이 지연되자 일각에서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단순히 노사간의 대립으로만 바라보고 외부 압박을 통해 노사간 합의를 종용하려는 움직임이 또다시 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진 대량 정리해고 사태의 이면에는 복잡한 경제 논리와 당사자간 이해관계가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2008년말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기업들 중 상당수가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우선적으로 비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하고 정규직 직원들까지도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회사밖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고, 노동계의 비정규직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기업의 입장에선 대다수의 직원들과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한진중공업도 정리해고 방침을 밝혔고, 부산의 여러 중견기업도 앞다투어 정리해고 절차에 들어갔다. 이중 부산지역에서 유달리 강성노조로 유명했던 회사가 구 대우정밀과 한진중공업이다. 이 두 회사는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의 핵심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2008년말부터 시작된 글로벌금융위기는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2009년 매출이 급감하자 두 회사 모두 정리해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전년도 매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회사는 희망퇴직 절차를 거쳐 곧바로 정리해고에 들어갔다. 회사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두 회사는 똑같은 위기상황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구 대우정밀은 현재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제조업체인 S&T대우㈜의 전신이다. 2008년 7월 1일, S&T대우는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주거래처인 GM의 파산 위기에 적극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S&T대우는 비상경영체제 아래 투자 계획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고 에너지, 비용 및 경비 절감 방침을 고강도로 실행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련은 그해 11월부터 찾아왔다. 한국GM의 급격한 판매량 감소는 곧바로 물량 감소로 이어졌고, 매출액은 50%이상 감소하며 회사의 존립까지 위협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경영진은 정리해고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우선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당시 S&T대우의 직원들은 모두 1180여명, 12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지만 추가 감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경영진은 정리해고에 앞서 당시의 경영상태를 하나도 숨기지 않고 직원들에게 공개했다. 정리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대표이사와 그룹 회장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절망적인 순간, 노조측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노조원 전원이 2개월간 무급휴직을 순환제로 갖고, 상여금 100%를 회사에 반납하겠다는 뜻이었다. 연봉의 절반 가까이를 포기하겠으니 모든 직원들이 함께 위기를 넘겨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노조측의 진심어린 제안을 받은 사측도 결국 정리해고를 포기하기로 했고, 노사간 대타협을 이뤘다. 노조원들의 희생에 고무된 임원진들과 사무직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어두운 경제위기의 터널을 결국 빠져나왔다.

금융위기 당시 4000억원으로 추락했던 매출은 올 연말이나 내년 중에 1조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회복됐다. 과거 GM에만 집중됐던 거래처와 수익원도 다변화돼 거침없는 성장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올해 임금협상은 창립 30년만에 처음으로 노사간 무분규 타협이라는 새역사도 창출했다.

세계경제 위기라는 큰 위기를 넘기고 나니 노사간에는 ‘신뢰’라는 커다란 자산이 생긴 것이다. 서로를 속이지 않고 진심을 믿고 의지할 사업 파트너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현재 한진중공업에는 노사간의 신뢰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영도조선소의 수주가 끊어진 상황에서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건조물량이 몰리는 것을 바라본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동료직원들과 회사로부터 버림받은 정리해고자 94명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은 외부적 압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94명의 정리해고자들이다. 이들이 협상의 주체로 나서고, 회사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노조측과 직원들도 함께 위기를 이겨낸다는 마음으로 회사의 부담을 나눠질 준비가 돼야한다. 이러한 모든 해결과정은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사측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직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희 기자 @cgnhee>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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