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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 고요한 떨림 안에서 나를 보듬다
라이프| 2011-11-04 10:59
숲길 안내하는 곤줄박이…

산새들의 작은 움직임속

삶의 소중한 지혜 찾아내


친구가 된 개와 잉어…

동물들간 사랑·우정

그 속에 원초적 아름다움이



사람과 동물이 친구처럼 지내는 얘기는 드물지 않다. 반려동물이란 말도 이젠 낯설지 않다. 민통선 부근 지장산 자락 산새들과 도반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도연 스님은 새들과 친구처럼 지낸 지 오래다. 새들은 스님의 손바닥에 있는 잣을 물어가기도 하고 아예 손바닥에 앉은 채 먹기도 한다. 곤줄박이는 숲길을 걸을 때 앞장서는 친구처럼 자상하다. 자신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먹을 것을 주며 보살펴주는 스님 역시 곤줄박이에겐 친구나 다름없을 터다. 


인간 역시 야생동물이나 들풀처럼 자연에서 흔적 없이 살아야 한다는 도연 스님은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중앙북스)에서 이들과 살아가는 법을 들려준다. 20g밖에 안되는 새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스님의 세심한 관찰은 그 속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읽힌다. 거기서 삶의 소중한 지혜들을 줍기도 한다.

나무 타기의 재주꾼 동고비는 다섯 마리의 애벌레를 부리 가득 물고 올 정도로 영리하다. 어느날 날개의 윤기가 사라진 동고비가 방으로 들어와 리모컨 위에서 기운 없이 앉아 있다 숨을 거둔다. 스님은 새들도 죽을 때를 아는지 싶다. 그렇게 가끔 사람 근처에 와서 삶을 마감하는 새들이 있다.

아침은 새들의 저마다의 인사로 시작된다. 스님은 늦잠을 자거나 딴청을 부려 출석 못한 녀석들에게는 휘파람을 불어 별일 없음을 확인한다. 청딱따구리는 특히 대답을 잘한다. 짧게 스타카토의 된소리로 화답한다.

빨강, 검정, 흰색이 잘 배합된 색동옷을 입고 있는 오색딱따구리는 디자인과 색에 대한 자연의 놀라운 비밀을 보여준다. 

교감과 우정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건 아니다.이종 동물 간에도 가능하다. 동물애호가이자 과학전문저널리스트인 제니퍼 홀랜드는 ‘네가 있어 고마워’ ‘네가 있어 행복해’(북라이프)에서 약육강식의 동물들도 서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믿기지 않는 현장을 보여준다.

홀랜드가 소개하는 46가지 동물들의 사연은 상생의 원초적 아름다움, 잃어버린 낙원을 꿈꾸게 한다. 강아지가 돼지에게 코를 비빌 때 그 달콤한 기분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게 홀랜드의 얘기다.

덩치가 크고 빠른 아나톨리아 셰퍼드는 나미비아에선 가축을 잡아먹는 치타를 퇴치하는 데 종종 고용된다. 그러나 샌디에이고에선 다르다. 치타와 셰퍼드를 친구로 맺어준 것이다. 개는 마치 부드러운 담요처럼 바짝 긴장한 채 날이 서 있는 치타를 안아주고 감싸준다. 치타는 차분하고 정 많고 배려할 줄 아는 개 옆에서 긴장을 풀고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셰퍼드와 치타는 누워서 친구의 털을 다듬어주는 일도 즐긴다. 개와 치타, 사람의 삶이 다같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최근 강아지 한 마리가 가족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마음을 붙이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 먹을 것만 주어서는 안 된다. 잠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고 똥도 치워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고 산책도 시켜야 하고 마음도 주어야 한다. 산다는 게 이렇다. 강아지 한 마리를 두고도 이런데 하물며 세상살이는 얼마나 걸림이 많겠는가.”(도연 스님의‘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중)

짝을 잃어버린 오랑우탄 톤다와 고양이 T.K의 우정은 각별하다. 짝을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톤다를 위해 동물원 측에선 고양이 T.K를 데려온다. 서로 뜨악한 관계는 이내 바뀐다. 톤다에게서 고양이를 빼앗으면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T.K는 곧 톤다의 모든 것이 되었다. 낮잠을 잘 때는 담요 밑에 누이고 놀 때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았다. T.K 역시 톤다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걸 무척 좋아했다.

코뿔소와 멧돼지, 하이에나가 한 방에 같이 들어있다면?

어느 고요한 밤 이미이어 국립공원에 밀렵꾼들이 침입한다. 침입자들은 가차없이 코뿔소들을 모두 살해한다. 이때 아기 코뿔소 타텐다는 나무 뒤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충격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타텐다를 보살피던 주드 가족은 얼마전 데려온 흑멧돼지 포글을 합류시킨다. 타텐다는 서서히 과거를 잊고 불행을 극복해갔다. 10개월이 지나 또 한 마리의 고아가 들어온다. 하이에나 사치다. 표독스런 하이에나는 낮엔 자기 동물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기어나오더니 마침내 아주 느리게, 이들과 사귀기 시작했다. 이 삼총사는 건강하게 커나갔고, 형제처럼 지내게 됐다.

그렇다면 개와 물고기의 우정도 가능할까. 골든 리트리버 치노는 어느날 뒷마당 우물에서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며 유유히 헤엄치는 코이 잉어 팔스타프에게 반한다. 둘은 같이 산책할 수도 몸을 부대끼며 놀 수도 없는 먼 종족이다. 팔스타프는 치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으로 나가 가장 먼저 물고기부터 찾는다. 물 위에 코를 대고 있으면 팔스타프는 물 위로 올라와 치노의 코에 입술을 댄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갖다 대기도 하고 팔스타프는 치노의 앞발을 잘근거리며 논다. 이 어울리지 않는 쌍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들이 보여주는 자연계 공통의 진리는“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마음을 붙이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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