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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낙엽들, 어디로 갔을까
뉴스종합| 2011-11-09 10:02
어울리지 않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 가을. 하늘은 높고 맑은데 사람들은 반소매 차림인 ‘부조화’가 곳곳에서 연출됐다. 하지만 지난주 말 중부지방에 내린 시원한 가을비 덕에 더위도 결국 물러갔다.

비가 내리고 나니 길가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붉고 노란 단풍, 은행잎 등이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삭막하던 아스팔트 도로가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그 위로 발걸음을 내딛노라면 왠지 몸과 마음마저도 가을에 물드는 듯한 느낌이다. 낙엽이 내려앉은 가을거리는 그렇게 사람들이 늦게나마 가을의 운치에 한껏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낙엽이 이리도 낭만적인 존재로만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 속 낙엽은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현실 속 낙엽은 때론 골칫거리기도 하다. 가을 경관을 위해 남겨두자니 보행자의 안전이 걱정이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낙엽은 자칫 잘못하면 보행자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원인이 된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은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화재유발 요인이다. 길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은행 낙엽도 보기엔 좋으나 코 끝엔 늘 쿠린 냄새를 풍기곤 한다.

그래서 낙엽은 아쉽게도 치워야만 하는 존재다. 환경미화원의 부지런한 빗자루질로 길 양쪽으로 쓸려 나가고, 결국엔 자루에 한 가득 담겨 어디론가 향한다. 2011년 가을, 그 많은 낙엽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서울 낙엽, 남이섬으로 시집갑니다=서울 송파구는 2006년부터 가을마다 관할 내 은행잎을 남이섬으로 시집보낸다. 11월 한 달 동안 매주 은행잎을 수거해 금요일마다 남이섬으로 배달한다. 올해도 지난주부터 은행잎 배달이 시작됐다. 지난 1주일 동안 모은 은행잎 15t을 트럭 6대에 나눠 싣고 구청 직원이 직접 남이섬을 방문해 전달했다. 한 달 평균 남이섬으로 보내지는 은행잎의 규모는 100t 정도다.

낙엽을 남이섬으로 시집보내게 된 이유는 남이섬의 짧은 가을 때문이다. 지역 특성상 나뭇잎이 금방 지는 등 가을이 짧고 겨울이 빨리오는 탓에 낙엽이 풍성하게 쌓인 낙엽길을 연출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당시 은행잎 처리로 고심하던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은 남이섬의 이러한 사정을 듣고 은행잎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남이섬은 멋진 낙엽길을 만들 수 있고, 구청은 소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물론 남이섬과 송파구 서로 일절 비용은 받지 않는다.

송파구 관계자는 “현재 남이섬에서는 송파구 낙엽만 받아주고 있다. 송파구 공기가 깨끗해서 은행잎 품질이 좋고 냄새도 상대적으로 많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약 200t 정도 남이섬으로 배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캠퍼스를 수놓은 낙엽물결.                      [헤럴드DB]


▶“제발 퇴비로 써주세요” …결국 소각장 신세=낙엽이 농장으로 보내져 퇴비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수도권 인근 농장에 퇴비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구청에서 “제발 퇴비로 써달라”며 사정을 해도 농장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병충해가 있거나 쓰레기와 섞여서 오는 낙엽이 많고, 농약이 묻은 낙엽을 퇴비로 쓸 경우 땅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가에서 퇴짜를 맞은 낙엽은 김포 매립지 등 쓰레기장에서 소각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서울 광진구는 낙엽을 직접 퇴비로 만들어 농가에 가져다 주고 있다. 2004~2005년까지만 해도 낙엽을 농가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낙엽이 농작물에 되레 유해가 된다며 농가에서 받아주지 않기 시작했고, 결국 광진구는 서울 강동구에 있는 퇴비제조기계를 이용해 낙엽을 직접 퇴비로 만들고 있다.

광진구 관계자는 “11월부터 1월까지 3개월여 동안 평균적으로 200여t의 낙엽이 수거된다. 수거된 낙엽을 직접 강동구까지 가져가서 t당 만원씩 주고 퇴비로 만들고 농가에 직접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성동구의 경우는 2004년도까지 은행잎을 수도권 인근 농장에 보냈지만 최근에는 농장에서 은행잎의 독성을 이유로 받아주지 않아 김포 매립지로 보내 소각하고 있다.

▶장학금으로 환생한 낙엽? =낙엽이 저소득가정을 돕는 착한 장학금으로 환생한 사례도 있다. 2005년께 서울 양천구 소속 환경미화원 7명이 2년간 수거한 낙엽으로 만든 퇴비를 농가 등에 팔아 얻은 수익 200여만원을 저소득층 자녀의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2007년에도 서울 성동구 소속 환경미화원이 낙엽을 퇴비로 만들어 얻은 수익 120만원가량을 가난한 중ㆍ고등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등 이른바 ‘낙엽 장학금’이 유행하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는 2003년께 낙엽을 제약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얻어 장학금을 지급했다. 은행잎에서 혈액순환을 돕는 진코민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거한 은행 잎을 제약회사에 판매했던 것. 이를 통해 1년에 20명씩 연간 500여만원의 장학금을 불우 청소년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낙엽장학금은 더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 경기도 파주ㆍ구리 등에 있던 퇴비제조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퇴비를 만들기가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양천구 관계자는 “예전에는 낙엽을 수거해서 춘천 등에 있는 공장에 팔았었는데, 퇴비를 만드는 업체가 거의 다 문을 닫아서 지금은 낙엽을 대부분 소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파구는 독일에서 혈액순환을 돕는 신약이 개발돼 국내 제약회사가 낙엽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낙엽장학금도 지급할 수 없게 됐다.

권백현 서울시 푸른도시국 조경관리팀장은 “물론 낙엽으로 인해 빗물이 빠지지 않아 시민이 어려움을 겪거나 차도에 낙엽이 날려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경우는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단풍이나 낙엽이 주는 계절의 낭만과 정취가 있어서 자치구마다 ‘아름다운 길’을 선정하는 등 시민이 낙엽과 함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ㆍ이소희 인턴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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