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의 길고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은 고사하고 이제 막 들어섰을 뿐이다.
국가 부도위기를 가까스로 면한 그리스 ‘예선’을 거치니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본선’에 맞닥뜨렸다. 프랑스라는 ‘결선’은 곧 닥칠 난적이다. 지뢰밭을 방불케 하는 위기가 지속되면서 이러다간 세계 경제공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고통분담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과 이를 통제할 수 없는 리더십의 부재, 유로존 각 국의 이해가 얽힌데 따른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립이 맞물려 위기 극복은 요원한 상황이다.
▶저항하는 국민=유럽 위기 극복의 첫걸음은 해당국들이 부채 축소에 서둘러 나서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상황은 어렵다. 무엇보다 ‘기름진’ 복지에 길들여진 국민의 반발이 거세다. 경기 악화에 긴축까기 겹쳐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최근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강도높은 긴축을 실시하겠다고 나섰지만, 경기 침체를 우려한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남유럽 위기의 ‘뇌관’인 이탈리아의 경우 마리오 몬티 신임 총리가 고강도 긴축 조치를 담은 경제개혁안을 준비중이지만 관철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파이낸셜타임스(FT)등 주요 외신들은 우려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로존 국가들도 긴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고질적인 저성장 문제가 심화될 수 있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유럽연합(EU) 권고치의 배를 넘은 프랑스 정부는 최근 정부지출 삭감과 연금제도 개혁 등의 내용을 담은 고강도 긴축안을 내놨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의 긴축 정책은 경제 성장을 희생시킨 조치라는 논란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통합의 리더십 실종=정치 리더십의 부재도 남유럽 재정위기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다. 위기 해소를 위한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EU 회원국간은 물론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내부 정치세력간 알력이 커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우리가 대담하면서 함께 움직이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 것”이라며 “상호 연관성이 높아지는 지금은 어떤 국가나 지역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고 국제 공조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목말라하는 각국의 정책 공조는 갈수록 꼬여만간다.
최근 이탈리아는 정치인을 배제하고 금융,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내각을 출범시켰지만 이에 대한 북부연맹등 기존 정치 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왕따당하는 ECB=이런 와중에 ECB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 아일랜드 등은 ECB의 국채시장 개입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발레리 페크레스 프랑스 예산장관은 “ECB의 시장 개입이 시급하다”고 했고 아일랜드의 엔다 케니 총리는 “ECB가 유럽의 재정 위기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기구”라고 강조했다.
반면 독일은 재정 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경제 개혁을 촉구하며 ECB의 통화량 확대와 대량의 국채 매입에 분명한 반대 입장이다. 최근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ECB는 최후의 대부자가 될 수 없다”고 재차 밝히기도 했다.
ECB가 정작 채권시장에 개입해도 약발이 별로인 것도 문제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위기국들의 국채 금리는 국가부도위험 마지노선인 7%안팎을 오가고, 프랑스 국채 금리도 독일과의 스프레드차이가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간 투자자들이 독일을 제외한 국가들의 국채를 팔고 있어 ECB의 국채시장 개입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