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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릴 뿐 불가능은 없다” 56세 사시 합격 오세범 씨
뉴스종합| 2011-11-23 09:15
“늘어나는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인생 중반입니다. 젊은 사람보다 빠를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 젊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긴급조치9호에 반대하며 유신정권 타도를 외치던 22세의 청년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보일러공이 됐고 또 긴 세월을 넘어 15년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2일 발표된 53회 사법시험 합격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이는 바로 최고령 합격자 오세범(56ㆍ사진)씨다.

“직장을 다니다가 41살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고 재충전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5년 안 합격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10년을 더 했네요.(웃음)”

오씨는 서울대 언어학과 74학번으로 소위 말하는 운동권의 길로 접어들면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1977년 3월 28일 서울대 일부 학생들은 유신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이는 4월 11일 2차 시위로 이어지는데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오씨다. 이후 2차례에 걸쳐 4년여의 옥살이가 이어졌다.

“출소 후에 보일러기술을 배워 제약회사의 보일러공으로 3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는데, 1987년 노동조합을 만들다가 해고됐고 이후 해고무효소송 등을 하면서 또 2년여를 보냈죠.”

소송은 그의 패배로 끝났지만 이 와중에 인권변호사인 김칠준 변호사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오씨는 법무법인 다산의 상담실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일이 저한테 잘 맞았습니다. ‘내가 변호사 하면 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학자의 꿈을 꾸던 제가 시대적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많이 늦었지만, 지금보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결심이 섰습니다.”

1997년부터 시작된 15년 고시생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가족이다. 아내는 학습지교사를 하며 가장 역할을 했고, 두딸은 ‘만학도’ 아버지가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훌륭하게 성장해 현재 큰딸(26)은 의사, 둘째(25)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소위로 근무하고 있다.

오씨는 사법시험 합격자 DB가 구축된 최근 10년간 최고령 합격자이고, 과거 사법시험 응시에 나이제한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역대 최고령 합격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식은 사회적 산물’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겠다”는 오씨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하잖아요. 다시 시작할 마음만 있다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오연주 기자/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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