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는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수제 영화간판’의 형식과 기법을 차용해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풀어낸 작품이 다양하게 출품됐다. 또 사회 현상을 풍자적으로 풀어낸 작품도 나왔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단성사, 대한극장 등 유명극장의 영화간판을 40여년간 그렸던 국내 ’영화간판의 산 증인’ 백춘태(67) 작가를 비롯해 백 작가의 뒤를 이어 오랜 기간 ‘간판쟁이’로 활동했던 화가들의 그림이 나왔다는 점.
해방 직전 황해도에서 태어나 여섯살 때 월남한 백춘태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미대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그림도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도 원없이 볼 수 있는 ‘간판장이’의 길을 택했다. 1959년 영화 ‘이름없는 별들’을 시작으로, 국내의 내로라 하는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도 간판미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아, ’간판장이’라며 하대했다. 수입도 적은 편이었다.
백 씨는 “60~70년대에는 사실 극장도 어려웠죠. 사람들이 1년에 딱 두 번, 설과 추석에 목욕과 이발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극장도 그 때가 고작 대목이라 간판 일도 그리 많지 않았어요"라고 돌아봤다. 그러다가 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간판 제작수요가 증가했고, 간판미술가에 대한 처우도 차츰 나아졌다는 것. 그는 "한창 잘 나갈 땐 서울시내 개봉관 간판은 거의 다 그렸다. 줄잡아 수천편은 될 것"이라며 “극장마다 간판의 구도나 색상, 기법이 달라 간판장이들 사이에 경쟁심이 생기곤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마지마까지 수제 간판을 고집했던 단성사가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바뀌면서 붓을 놓았다. 백 씨는 “수제 영화간판은 사람 냄새, 땀 냄새가 났다. 지금은 죄다 똑같이 찍어내니 인간미가 덜 하다. 낭만도, 간판 자체가 풍기는 맛도 사라진 셈”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백 씨는 이번 전시에 ‘콰이강의 다리’, ‘경마장 가는 길’, ‘장군의 아들’, ‘애마부인’ 등 자신이 그린 간판작업을 하나의 캔버스에 옮긴 ‘아름다운 시절’을 출품했다. 또 과거에 그렸던 간판을 촬영한 사진들도 선보인다.
전시에는 백 씨와 함께 간판미술가로 활동했던 김영준, 김형배, 강천식의 수제 영화간판이 내걸렸다. 또 이들의 인터뷰 및 간판 제작과정을 담은 작가 김현승의 영상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31일까지. 02)2230-6628 <사진 제공-충무아트홀 갤러리>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