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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오면 우린 가택연금 신세”
뉴스종합| 2012-02-07 11:29
페인트 벗겨지고 초라
방도 비좁고 비까지 줄줄…

집앞 경사심해 위험천만
미끄러워 외출 꿈도 못꿔

설상가상 재개발지역 지정
언제 쫓겨날지 조마조마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 허름한 집 한 채가 나온다. 경사도는 50도가량. 일반 차량도 눈이 왔을 때는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다. 이 허름한 집은 바로 80살의 ‘소녀’, 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사는 쉼터인 ‘우리집’이다. 겉에서 보기에 초라하기 그지없다.

여름철에는 비가 샌다. 요즘 같은 한파가 몰아칠 때는 외풍이 삭풍(朔風)이다. 최근 새로 도배를 해서 문제는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벽에는 시커먼 곰팡이 균들이 할머니들의 목구멍을 오갔을 정도다. 집 앞 경사가 심하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은 겨울만 되면 사실상 ‘가택 연금’ 상태가 된다. 월 100만원가량 난방비를 써 기름 보일러를 돌리지만, 삭풍은 할머니들의 어깨를 시리게 한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우리집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계당국의 절실한 도움의 손길이 요구된다.

지난 2003년 이후 할머니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 왔다. 이향만리 타국에서 ‘어머니가 있는 조국’을 애타게 그렸던 소녀들. 그 소녀들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징용 가서 죽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며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다 죽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들은 이제 80살이 됐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사과도 없다. 그런데 이들 정신대 할머니들을 챙겨주기는커녕, 정부는 이 할머니들을 비 새는 집, 외풍이 부는 집에서 살게 한다.

80세의 정신대 할머니에게‘ 소녀’라는 표현은 다소 무리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그녀들의 봄(春)을 소녀일 때 일본군들에게 빼앗기고 짓밟혔다. 이후 그녀들에게 봄은 없었다.
빼앗긴 봄에 봄바람이 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파가 몰아 닥치면 시민들은 바람막이를 가져다 입혀주고 눈이 오면 우산을 받쳐준다. 7일 오전 한 시민이 입혀준 것으로 보이는 진곤색 바람막이가 눈길을 끈다. 이 소녀들의 보금자리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우리집’(왼쪽)은 초라하지만, 봄바람이 불기를 바랄 뿐이다.                                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현재 우리집에 사는 정신대 할머니들은 모두 3명. 외롭고 한(恨) 많은 그녀들에게는 유일한 벗(友)들이었다. 이들은 함께 살을 부딛히며 ‘우리’가 됐고 이 둥지를 80세 소녀들은 ‘우리집’이라 불렀다.

이 우리집이 ‘남의 집’처럼 관리ㆍ운용되고 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동무들이 놀러와 하룻밤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지만 방이 좁아 이것도 쉽지 않다. 죽기 전에 똑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63명의 동무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하루이틀 새 그 63명의 동무들은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쉼터 ‘우리집’은 건물 전체가 너무 낡아 비가 새기 일쑤다.

이 집은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들이 마음 놓고 살기에 불편한 환경이다.

정대협 측은 할머니들이 좀 더 편하게 쉴 곳을 찾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는 5월 건립 예정인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이 가까운 마포구 성산동을 가장 희망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박물관과 쉼터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집을 찾아보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 문제’다.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은 “할머니들을 한 분이라도 더 편안하게 모시고 싶지만 예산이 부족해 쉽지 않다”며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손영미 쉼터 소장은 “이곳이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있다”며 “매년 계약을 갱신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할머니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할머니들과 함께 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손 소장은 “쉼터의 공간이 부족해 이 중 3명의 할머니만 살고 있는데 좀 더 넓은 쉼터가 생기면 각지에 흩어진 다른 할머니들도 함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현재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존자 63명의 평균연령은 87세다. 지난해 16명의 위안부 피해 ‘소녀’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병국ㆍ서상범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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