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국민 90%가 찬성해도 “NO”… ‘그들’ 만의 국회 이기주의
뉴스종합| 2012-02-08 10:49
복지위 감기약 슈퍼판매 공전
법사소위 6명이 의약계 출신
정개특위 선거구 획정 ‘밥그릇 싸움’도

자본시장법·각종 민생법안…
7000개 법안 국회서 ‘먼지’만 쌓여

“국민 90%가 찬성하는 데도 왜 감기약 슈퍼 판매가 안될까.” 이런 궁금증은 국민과 국회의원 따로, 국회의원 만의 리그가 있기 때문이다.   

약사법 개정안으로 뜨거운 보건복지위원회를 들여다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법안심사소위 위원 8명 가운데 신상진(대한의사협회장), 원희목(대한약사회장), 이애주(전국병원간호사회장) 손숙미(대한영영사협회장ㆍ이상 새누리당) 등 절반이 단체장 출신이다. 한의사 출신인 윤석용 새누리당 의원과 치과의사를 지낸 전현희 민주통합당 의원까지 포함하면 6명이 의약계 출신이다.

국회 관계자는 “국민 편익만을 고려했다면 감기약 슈퍼 판매를 두고 이렇게까지 논란이 벌어졌겠냐. 이익단체의 압력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그들만의 리그’를 고치겠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천의 핵심(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 중심이라는 가치를 원칙으로 공천혁명을 해나갈 것(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바야흐로 국민참여 시대다. 경제민주주의가 ‘민주주의 4.0’의 화두로 자리잡은 것은 양극화 해소라는 국민적 욕구가 정치적 공감 속에 분출했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권을 강타한 안풍(安風)과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당선은 ‘국민 눈높이’ 정치가 현실이 된 단적인 사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4ㆍ11총선 공천에서 앞다퉈 국민참여경선을 선언했고, 평범한 국민과 2030대 젊은층이 인재영입 대상의 0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여야할 것 없이 입이 닳도록 ‘국민’을 외쳐대지만, 정작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안에서 ‘국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막바지로 접어든 18대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감기약 슈퍼판매법(약사법 개정안)은 법안 제출 5개월이 지나서야 보건복지위에 상정되는 악전고투 끝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청목회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 아래 법사위를 보란듯이 통과했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서도 선거구조차 획정하지 못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개혁은커녕 후퇴만 거듭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 밥그릇 싸움과 정당 이기주의의 합작품”이라고 꼬집었다.

또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국방개혁안, 각종 민생법안을 포함해 7000개 가까운 법안은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디도스 특검과 언론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미디어렙 법안도 장기 표류 중이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인적쇄신과 통합작업에는 밤잠을 설치면서도 정작 국정운영과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법안은 나몰라라 해온 것이다.

국회가 이처럼 ‘그들만의 리그’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는 “새누리당에 판ㆍ검사 출신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면서 “판ㆍ검사 출신은 현장의 치열함, 서민의 아픔을 모르고 자신이 잘났다는 사람이 많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8대 국회의원의 직업 중 전직 국회의원(43.8%)과 정당인(29.1%)을 제외하면 법조인이 7.4%로 가장 많다. 재선 이상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 법조인 비율은 더 높아진다. 새누리당의 경우 의원 4명 가운데 1명꼴로 율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의 1%에도 못 미치는 법조인이 거대 여당의 4분의 1을 점령한 셈이다.

19대 총선에서도 이 같은 직업 편중현상이 완화될지는 미지수다. 7일 현재 총선 예비후보 등록자 가운데 법조인은 7.6%로 오히려 비율이 더 늘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된 조건에서 정치는 항구적으로 사회 상층 엘리트 간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조건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개혁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해도 대중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국회에 입성한 직능대표들이 해당 상임위에서 국민의 대표가 아닌 이해단체의 로비창구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위원회를 약사와 의사 등 의료계 출신이 점령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구성원이 모두 개혁의 대상인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국회를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민감한 개혁 사안을 이해당사자인 정치인에게 맡기면서 답이 쉽게 안나오는 것인 만큼 선거구 획정 등 주요 개혁안을 외부 민간에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춘병 기자 @madamr123>

ya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