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호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법과 원칙을 깨버렸다. 앞으로 금융질서는 어떻게 잡아가란 말이냐.”
“국가의 잘못된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가난하다고 다수가 시위에 나선다면 그때도 국민의 혈세로 피해를 보상해 줘야 한단 말인가.”
여ㆍ야 합의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던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이 정부와 금융권의 비난이 여론에 직면하면서 오는 15일 법사위 및 국회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억울한 피해를 당한 저축은행 고객들을 돕는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방법과 형식논리를 벗어난 포퓰리즘이란 비판이다.
정무위가 이날 통과시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긴 특별법은 현행법상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의 피해액 일부를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보상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다. 당초 예금보험기금으로 조성한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이용, 8만2391명에게 예금 5000만원 초과분의 55%와 부실판매책임이 인정되는 후순위채 투자금의 55% 등 1025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문제는 예보기금이 원리금 합계 5000만원 미만의 예금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재원이라는 것이다. 2002년 1월 재도입돼 10년째 지켜온 예금보호제이지만, 후순위채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투자자 책임주의’에 따라 손실분을 메워주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부실저축은행 사태를 경고해온 마당에 고객 책임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고금리 혜택을 누린 일부 저축은행 고객을 위해 특별법으로 보상해주면 결국 은행ㆍ보험ㆍ카드 등 다른 금융권 고객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는 논리다.
5000만원 넘게 맡긴 저축은행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에 예외를 두면 나중에 은행 예금자, 보험 가입자, 증권 투자자의 손실도 보상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무위가 통과시킨 특별법은 부분 예금보호제도를 무너뜨리고 향후 구조조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특별법이라지만 헌법상 금지된 소급 입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일갈했다.
일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돈을 엉뚱한 데 쓴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어렵사리 마련된 저축은행 특별계정(예보기금)은 오는 2026년까지 은행,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예금보험기금의 45%, 저축은행 예금보험기금의 100%를 모아 조성되는 재원으로 순수히 금융회사 구조조정에 쓰일 돈이다. 구조조정은 부실저축은행 매각시 순자산부족액을 메워주거나, 보험사고가 났을 때 5000만원까지 보상하는 것으로 용도가 한정된다.
따라서 이 계정을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용으로 쓰겠다는 정무위의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예보기금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고객자산의 일부를 떼어 모은 것으로, 국민이 조성한 민간재원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은행연합회, 생손보협회 등은 정무위가 수많은 은행 예금자와 보험 가입자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쌓아 둔 예보기금을 당사자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제멋대로 끌어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쏟아부으려 한다며 쓴소리를 내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특별계정은 저축은행 건전화를 지원하고자 금융권의 동의에 따라 설치된 것으로 피해자 보상을 위해 쓰는 것은 목적에 어긋난다”며 “피해자 보상기금에 출연하면 특별계정의 차입금 상환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또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한 번이라도 조항을 제대로 검토했다면 이런 엉터리법은 나올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