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남은 가족 고통마저 내가 해결”…과잉 책임감이 비극 초래
뉴스종합| 2012-02-16 11:35
가족주의 강한 한국사회
한명의 절망이 구성원에 전염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최근 경제 문제가 큰 원인
취약한 사회보호망도 한몫

지난 1일 28년간 정신장애 동생을 돌보고 살던 40대 남자가 장애인 동생을 보살피는 게 너무 힘들다고, 살고 싶지 않다고, 11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혼자 떠난 게 아니었다. 장애인 동생과 함께였다. 하늘 아래 피붙이라곤 유일한 동생. 서로가 전부였던 형제는 그렇게 함께 세상을 떠났다.

자살은 이미 한두 해 문제가 아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지역에 국한된 문제 역시 아니다.

그러나 유독 ‘대한한국’에서만 일가족이 함께 삶을 포기하는 ‘가족동반형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다 해외 언론에서 ‘한국형 자살’로 가족동반형 자살을 부각시키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단독 자살이나 동일한 가치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집단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나라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안병은 수원자살예방센터 소장은 “ ‘가족동반형 자살’은 외국에선 흔치 않는, 한국 사회에서만 도드라지는 자살유형”이라면서 “이는 한국 사회의 사회ㆍ문화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한국 사회의 ‘낮은 사회 안전망’이 꼽혔다. 가족 보호의 책임이 사회보다 가족 당사자에 절대적으로 치중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심상용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가족 보호를 위한 사회 서비스 확충 등을 소홀히 하는 대신, 가족들 당사자들에게만 가족 보호의 책임을 계속 전가하는 시스템을 꾸려왔다”면서 “이 때문에 한 가족이 대처 불가능한 한계적 상황에 놓였을 때 가족 동반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족주의’가 강한 사회라는 점도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가 강해서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절망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절망감과 나쁜 감정이 빠른 속도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전염된다”면서 “구성원 중 단 한 명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에 반대할 수 있다면 가족 동반자살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이들은 이미 전염돼 있기 때문에 가족 동반자살로 이어진다. 일종의 집단자살”이라고 설명했다.

‘가부장적 문화’도 지적됐다.

육성필 QPR자살예방연구소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은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존재”라면서 “내가 죽으면 가족들의 삶은 고통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차단해주는 것도 가족에 대한 자신의 의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부모가 자녀와 자아 혼란을 일으켜 동반자살을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해 자녀의 의사는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ㆍ문화적 측면과 함께 ‘사회 양극화’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원인이다.

이미숙 배제대 미디어정보ㆍ사회학과 교수는 ‘가족 동반자살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탐색 연구’(2007년ㆍ한국보건사회학회)라는 논문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가족의 경우 경제난, 빚 등 경제 문제가 동기인 경우가 많았다”면서 “갈수록 커지는 사회 양극화지수와 가족 동반자살 증가 추세는 관련성이 높다.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한국 가정이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황혜진 ㆍ이지웅 기자/hhj6386@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