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
하정우, ‘마초’ 이미지 벗고 ‘로코’ 神을 꿈꾸다 (인터뷰)
엔터테인먼트| 2012-02-27 08:28
2012년, 햐정우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400만 관객을 눈 앞 에 둔 ‘범죄와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오는 2월 29일 개봉하는 ‘러브픽션’(감독 전계수)을 통해 또 한번 스크린을 독점할 태세를 마쳤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호기심이 많고, 타인을 배려하며 재치가 넘치는 배우였다. 문득 그가 쉴 틈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이 같은 성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순수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찌질한 남자 ‘구주월’ 역을 맡았다. 그간 그가 여러 작품을 통해 선보였던 ‘마초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실제 모습과 조금이라도 매치하는 부분이 있었을까.

“구주월같은 사랑을 20대 때 해봤어요.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잖아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제 감정이 우선인, 그런 시절이 있었죠. 구주월을 만나면서 어렸을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더군요.”


그동안 하정우의 작품 속에서 ‘로맨스’를 찾기는 힘들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추격자’, ‘비스티 보이즈’, ‘황해’까지 그의 이름을 내걸고 나오는 작품 속 여배우와 알콩달콩한 사랑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멋진 하루’가 있지만, 달콤한 애정물을 그린 영화는 아니었기에. ‘러브픽션’은 하정우의 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맞아요. 이런 류의 영화를 처음 해보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같을수도 있겠지만요. 어쨌든 이번 영화에 갖고 있는 애정이 남달라요. ‘러브픽션’은 기존의 로맨스영화와는 다른 차별화된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극중 구주월은 여자의 감정은 생각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서투른 애정표현으로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하정우가 여자라는 전제하에, 구주월이 대시를 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어요.(웃음) 아무래도 너무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일일이 비위를 맞추기는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여자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하잖아요.”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 하정우의 대사 호흡은 굉장히 길다. 특히 희진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속 대사는 거의 ‘랩’ 수준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연기 내공을 쌓은 그에게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노력’만이 있을 뿐이었다.

“‘의뢰인’ 당시에도 장문의 대사가 있긴 했죠. 물론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그래도 연극을 해서 그런지 장문의 대사가 낯설지는 않았어요. 문어체 대사가 많아서, 물리적인 시간을 투자하면서 반복연습하고 평상시에도 많이 썼죠. 대사가 자연스럽기까지 2~3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이처럼 그는 ‘구주월’을 자신만의 캐릭터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 뿐 아니라 극의 세밀한 전개까지 완벽히 이해했다.

“구주월이 쓴 연재소설 ‘액모부인’이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잖아요. 이건 곧 구주월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죠. 전 여자친구에 대한 미련, 심리 상태 등 쿨하지 못한 ‘구주월’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죠.”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구주월’에 대한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로도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그이기에, 구주월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그는 ‘구주월’과 비슷한 연애를 경험한 전계수 감독을 모델링 삼았다고.


“구주월이라는 인물을 접했을 때 전계수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감독님의 연애스토리를 들으며 구주월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죠.”

이처럼 특유의 관찰력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배우 하정우.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함께 호흡을 맞춘 공효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그에게 공효진은 ‘여배우’라기보다는 ‘따뜻한 사람’에 가까웠다.

“여배우, 여자라는 관점을 버리고 인간적으로 접근했죠. 효진이는 정말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소녀같은 사람이에요.”

공효진은 하정우의 ‘577 프로젝트’에도 참가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577 프로젝트’는 지난해 하정우가 ‘황해’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을 당시 실행에 옮긴 공약이다. 지난해 11월 15일부터 12월 4일까지 약 20일 동안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종단을 마쳤다. 이 프로젝트에는 공효진 이외에도 친동생 차현우, 신인배우 18명이 함께 했다. ‘577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됐으며, 올 여름 개봉될 예정이다.

힘들었지만, 값진 구슬땀만큼 뿌듯했던 국토 대장정을 마친 하정우는 공효진과 또 다른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있었다.

“국토대장정 다녀와서 여행의 진짜 매력에 푹 빠졌죠.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생각중이에요. 북유럽을 가보고 싶기도 하고, 순도 100% 배낭여행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어요.”

이처럼 실제로도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은 극중 연인으로 분해서도 손발이 척척 맞는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신선했다. 또 권태기를 맞는 장면 역시 실제 연인 못지 않은 열연으로 공감을 자아냈다. 문득 그만의 권태기 극복법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여자 친구의 단점이 하나 둘 씩 보이면서 권태가 생기는 법이잖아요. 저는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화’ 뿐이라고 생각해요. 연애 뿐 아니라 사람간에 빚어지는 갈등은 대화만큼 좋은 게 없겠죠.”

인터뷰 내내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는 하정우는 실제 연애방식 역시 자유로웠다.

“집착하거나 구속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에요. 올가닉 라이프 처럼 친환경 적이라 구속보다는 방목에 가깝죠. (웃음) 그냥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타입입니다.”

하정우는 전작 ‘범죄와의 전쟁’에서 호흡을 맞춘 상대 배우들로부터 ‘인간성’ 좋은 배우로 칭찬이 자자하다. 그의 대선배인 최민식 역시 하정우에 대해 “영민하고 머리 좋은 배우라 무섭기까지 하다”고 극찬한 바 있다.

“선배들을 잘 모시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서 그런 칭찬을 듣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거든요. 배우를 더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하려고 해요. 그래야 소통이 밀도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범죄와의 전쟁’과 ‘러브픽션’ 속 하정우의 역할은 상당히 다르다. ‘범죄와의 전쟁’이 최민식 위주의 영화였다면, ‘러브픽션’은 하정우가 극을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 나선 작품이다. 하지만 그에게 역할과 분량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작품의 매력, 함께하는 동료들이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 분량이 얼마만큼이냐 이건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이 감독들, 또는 배우들과 하고 싶냐 안하고 싶냐가 중요하죠. ‘러브픽션’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작품이에요. 함께 기다려준 감독님, 스태프 분들게 감사할 따름이죠. 영화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벽함’을 뒤엎는 폭발적인 매력이 있어요.”

삶에 있어서, 작품에 있어서 매번 진심을 다하는 하정우는 오는 3월 말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 촬영에 들어간다. 쉴 틈이 없이 달리고 있는 그에게 “쉬지 않을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물리적으로 계산했을 때 지난해 11월부터 밀도있게 쉬었다”며 껄껄 웃어댔다. 올 한 해 어떤 배우보다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하정우의 끝없는 도전이 찬란한 봄처럼 화려하기를 기대해 본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사진 송재원 기자/ jw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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