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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새삶을 찾는 사람들 "다시 찾은 희망 사장님 부럽지 않아요""
뉴스종합| 2012-02-28 08:30
15년 전만해도 서울 강남의 잘나가던 옷 가게 사장님이었던 B(52) 씨. 그는 지금 경기도 화성의 한 온천에서 라커룸 키를 나눠주고 있다. 그는 24시간 맞교대로 일하고 잠은 직원 숙소에서, 밥은 직접 고친 전기 밥솥으로 해결하고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희망을 가진 지금이 행복한 순간”이라고 답한다. 그는 전직 노숙인이다.

“그럼 내가 집을 나가마”라는 한마디를 가족들에게 남기고 집을 나온 B씨. 외환위기 당시 권리금 분쟁으로 사업이 부도나자 단란했던 가정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노숙인이 돼 처음 길에서 보내는 밤은 고되기 보단 두려웠다. 사람들의 시선은 평소에 노숙인을 더럽다고 깔보던 바로 자신의 눈빛이었다.

길거리 생활이 그리 오래지 않아 몸이 망가졌다. 심한 음주로 간이 안 좋아 얼굴이 누렇게 뜨고 당뇨로 오른발이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눈도 침침해졌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극심한 우울증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 준 것은 서울역 드림시티 노숙자 센터의 우연식(50) 목사였다

술과 신세한탄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다른 노숙인들을 항상 ‘선생님’이라 부르며 사랑으로 대하는 우 목사의 태도는 B씨의 삶을 변화시켰다. B씨는 다른 노숙인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했다. 센터를 고치는 공사에는 가장 앞장서 일을 했다. 건강을 되찾고 나서는 1주일에 2,3일 인력사무소를 찾아 막일도 나갔다. 그렇게 두달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나니 작은 단칸방 월세 보증금이 마련됐다.

“여기는 떠나보내는 교회입니다. 선생님은 이제 떠나실 때가 되셨어요.”

우 목사의 말이 야속하게도 들렸지만 언제나 신세만 지고 살 순 없었다.

당뇨 합병증이 완전히 낫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다시 만난 가족들에게 생활비도 보내야 했다. 앉아서 하면서도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일을 찾아다니다 보니 화성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잡은 직장에서 그는 매달 125만원을 받고 80만원을 가족에게 보낸다. 남은 돈으로는 하루에 담배 한 갑 사서 피우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가족들에게 희망이자 마지막 의지할 곳이 됐다.

넉넉할 때는 하지 못 했던 아버지 역할, 함께 목욕하고 같이 낚시가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을 살고 있다고.

원호연 기자/why37@herB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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