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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그리는…금융계의 관우
뉴스종합| 2012-02-29 10:37
대리 근무시절‘ 30년 사장 진급 플랜’세웠는데 18년4개월만에 CEO 꿈 이뤄…다음 목표는 아시아 대표 IB육성

은행장으로 근무하시던 외증조부·평생 은행맨이셨던 부친이어 딸도 글로벌 IB에 재직 4대째 금융인 삶 업으로 삼아 뿌듯

딸 성화에 못이겨 금연 11년째…인터뷰서 취미를 요리라 하자‘ 일년에 한 두번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며 따끔한 질타(?)

수많은 여행지중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선상의 석양·베니스 곤돌라 위에 피어오른 물안개 아직도 눈앞에 생생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최고경영자(CEO) 인터뷰가 이번처럼 흥미로운 적도 드물었다. 전에도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다시 마주 앉으니 감춰진 진면목이 드러났다. 솔직함 속에 따뜻함과 목표지향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면까지 겸비해서일까? 

어디론가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인데 그 위에 몸을 맡겨보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유상호(52). 잘나가는 증권사 CEO. 마치 양파가 껍질을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듯 인터뷰는 ‘맛있게’ 진행됐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난 유 사장은 업무와 개인의 삶 모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계획적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인간미다. 늘 목표를 향해 바삐 살아온 게 아닌가 했더니 스웨덴으로 가는 카페리 선상에서 석양에 눈물을 흘리는, 딱딱한 CEO인가 했더니 사람 만나 소주 들이키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유 사장? 이론과 영업력을 겸비했죠. 그 친구 기획력이 있어 큰 그림을 잘 그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CEO로서의 역량은 애초부터 있었던 같아요.” 대우증권 시절 유 사장을 부하 직원으로 뒀던 강창희 미래에셋그룹 부회장의 회고다.


▶“이 친구는 틀림없어”…입사 때부터 사장을 꿈꾸다=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지 몇 달 안된 대리 초임 때였다. 이 회사를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CEO로 올라서려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해봤다. 당시 진급 체계로 최소 29년 정도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 구상한 것이 30년 플랜이었다.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좋은 실적 쌓으면 30년 후엔 CEO 후보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스스로 나는 ‘깜’이 된다 되뇌면서 30년 계획 속에서 정말 열심히 했죠.”

유 사장은 일을 한 번 맡기면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으로 기억됐다. 그래서인지 30년으로 잡았던 CEO 입성은 정확히 18년4개월 만에 이뤄졌다. 최단 기간 초고속 승진 사례를 남겼고, 증권업계 최연소 CEO 기록도 갈아치웠다.

겉으로야 CEO가 된 지금이 전성기겠지만 유 사장 개인적으로는 1992~1999년 런던에서의 활동을 가장 화려한 시기로 꼽는다. 1992년 한국 증시 개방과 함께 유럽 기관투자가 세일즈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심하게 했어요. 이 업계에 들어와 처음으로 내 이름 석자를 박았으니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 7년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에게 ‘전설적(Legendary)’이란 닉네임이 붙은 것도 그 당시다.

런던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매년 가을쯤 외국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보다 선진화된 시스템에서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1년에 꼭 한번 열병 앓듯 고민했다.

이런 그를 다잡은 것은 의리와 야망이었다. ‘내가 대우증권을 세계적인 IB로 만들고 사장까지 할 텐데’라는 초심이 그를 붙잡았다.

강 부회장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유 사장은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쬐끄만’ 얼굴은 아니지만 훤칠하고 신뢰감이 든다”였다.

최근 운동으로 몸무게를 10㎏이나 뺐다는 유 사장은 현재 키 180㎝에 75㎏으로, 외모도 남부럽지 않다.


돌아보는 시선이 카메라 렌즈 너머 먼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하다. 18년4개월 만에 CEO의 꿈을 이룬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그는 또 다른 주춧돌을 준비 중이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주춧돌 잘 놓는 사람되고파”= CEO의 꿈은 이뤘다. 회사를 아시아 대표 IB로 만드는 꿈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고 했다.

“국내에서 1등 자리를 굳힌 다음 아시아 리딩그룹 중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그것까지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초석을 다져 놓으면 다음 사람이 잘할 수 있겠죠.”

그래서 유 사장은 가장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첫 주춧돌을 잘 놓았던 사람’이다. 암벽등반하듯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겠다는 것이 딱 유 사장의 스타일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회사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본금일 수도 있지만 거래 고객의 자산이 더 늘어나야 펀더멘털이 튼튼해질 수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이머징마켓 쪽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쁜 와중에도 학생들 강연 요청에는 꼭 응한다. 일종의 재능 기부이자 이 역시 하나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시간 동안 연탄을 나른다고 생각해봐요. 몇 장 되나. 하지만 2시간의 강연은 학생들의 진로를 바꿔 놓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남 가르치는 걸 즐긴다. 가르쳐서 남이 잘되면 행복하다.

이는 2600여명 직원들에게 먼저 적용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행복해야 하며,열심히 하는 직원들에게 충분히 보상해서 그들이 잘되는 걸 보면 그 또한 행복해진다

리더십이 특별할 듯하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좋아하기라고 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보다는 누구를 대하더라도 진정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년에 한두번이라도 꾸준히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의 진심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써야 한다고 여긴다.

직원들을 보면 그냥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CEO를 그만둔 후의 계획이 공익성 있는 일을 하면서 기여하는 쪽으로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딸바보’에 ‘팔불출 남편’= 끔찍히 아끼는 딸이 하나 있다. 딸의 정성에 담배까지 끊었고 금연 약속은 11년째 지켜지고 있다.

딸은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유 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취미를 요리라고 말했다가 딸한테 지적(?)을 받았다. 일년에 한두 번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고.

그래도 유 사장은 요리하기를 즐긴다. 요리는 같은 재료라도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모두 달라 매우 창조적이고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만들어본 요리가 전복 삼계탕이라고 소개했다.

아내 김소연 씨 얘기가 나오자 애정과 미안한 마음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두 사람은 78ㆍ79학번으로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나온 ‘신촌 커플’이다.

“아내가 국토개발연구원에 다녔어요. 제가 런던 현지법인으로 발령나면서 따라왔는데 원래 4년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7년이 넘으면서 (아내의) 경력이 끊어지게 됐죠. 귀국 후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 때문에 신경써야 했고요. 지적이고 온화하며 인내심이 강한 사람인데 많이 미안하죠.”


유상호 사장은‘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2010년 무주‘ 트루 프렌드(True Friend) 페스티벌’ 행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는 유 사장. 같은 해 10월 호남지역 우수 사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일일 세프로 변신해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 지난해 상반기 사내 최우수 직원 초청행사에서 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

▶4대째 내려오는 금융人의 DNA= 딸 서은 씨는 공부도 잘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명문인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글로벌 IB에 취직해 홍콩에 있었고, 서울로 직장을 옮겨 역시 글로벌 IB에서 근무하고 있다. 

평생 은행맨이었던 아버지, 증권사 CEO까지 오른 유 사장, 그리고 글로벌 IB에 다니는 딸. 3대째 금융인으로서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외증조부가 은행장을 오래 지내셨으니 외가쪽까지 따지면 4대째로도 볼 수 있다.

“글쎄요, 집안 DNA가 금융 쪽과 맞나 봅니다.”

유 사장은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레 금융인의 길로 들어섰고, 딸 역시 강요가 없었음에도 금융을 업으로 삼았다. 딸이 어릴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빠 같은 일을 하면 술을 많이 먹어야 해요?”

유 사장은 요즘은 주량이 줄었지만 한자리에서 소주 3병은 거뜬히 해치운다.

어쨌든 아빠와 같은 업종을 택한 것이 뿌듯하다.

“저의 모습이 그리 허황돼 보이진 않았다는 얘기잖아요.”(웃음)


▶여행하며 울고, 영화보면서도 울다= 얘기가 여행 쪽으로 흘러가자 목소리가 살짝 떨리면서 톤이 높아졌다. 유 사장에게 여행은 삶의 일부분이다. 일과 여행 중에 택일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당연히 일이지만 그후엔 분명 여행이라고 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은퇴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유럽 배낭여행이다. 독일에 연수를 갔었던 적도 있고, 런던 법인 시절에도 휴가때마다 유럽 여행을 다녔지만 다시 한 번 유럽 전역을 누비고 싶다고 했다.

유럽여행 중에서도 노르웨이,스웨덴의 북유럽 여행과 이탈리아 베니스 여행을 최고로 꼽았다. 혼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카페리 선상에서 만난 석양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베니스에서는 이른 아침 에스프레소를 한잔하고 탄 곤돌라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에 가슴이 짠해져 눈물을 흘린 경험도 전했다.

“연수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회사에서 런던 주재원을 뽑겠다고 해서 주저없이 지원했어요.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에서 한 번 붙어보자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그때의 석양이 두 번째 이유였죠. 그때의 감동과 향후 40, 50대에 느낄 감동은 다를 것이기 때문에 당시 그 순간을 아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년시절 독서광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영화광이다. 대입 예비고사 일주일 전에도 몰래 영화를 보러갔을 정도다. 최근 개봉작도 빠짐없이 다 봤다. 가장 최근 개봉한 ‘원더풀라디오’의 감동적인 장면을 보다 울었다고 털어놨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영화에 나왔던 곳들도 한번씩 다 밟아볼 작정이다. 갔다 와서 쓸 책 제목도 미리 생각해놨다. 바로 ‘명화와 함께하는 세계 기행’.

20번이 넘게 본 뮤지컬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이 됐던 찰츠부르크는 이미 8번은 가봤다. 영화 ‘남과 여’에서 주인공 남녀가 바닷가를 거닐 때 깔려있던 나무 판자 길도 직접 걸어봤다. 파리 서쪽 노르망디 해변의 해안도시 도빌이라는 곳에서다.

“어느 곳이든 거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두 편은 있어요.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 그런 걸 생각하면 여행이 훨씬 풍요로워지죠. 안 그래도 오늘 점심 때 누가 여행을 간다길래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펍에 대해 얘기해줬습니다.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을 찍은 집이거든요. 같은 펍이라도 그런데 가서 음식을 먹어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서 책 하나를 더 써야겠다고 한다. 제목은 ‘영화와 함께하는 세계 식도락 기행’.


▶‘중용’에서 길을 찾다= 유 사장은 1960년 경북 안동에서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의 15대 손으로 태어났다. 고향이 안동에다 유교적 가문에서 자라 상당히 보수적일 것 같지만 어릴 적에 개화(?)했다고 웃으며 귀띔했다.

 그가 요즘 ‘중용’을 행동규범으로 삼는 것도 출생의 영향이 자리한지도 모른다.

“역사책에 나오는 사자성어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듯 해 고전에서 길을 찾곤 합니다.”

현실을 무시한 변혁은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되,득실을 따져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유 사장은 이를 ‘옵티마이제이션(최적화)’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분들과 가깝냐는 질문에 증권업계에서는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과 강창희 부회장을 꼽았다. 대우증권 시절 보스이자 멘토였다고 했다.

혹 정치에도 뜻이 있을 법해서 물어봤다. 과거 한땐 생각해봤다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별 뜻이 없다고 말을 돌린다.

늘 인생을 체계적이면서도 준비하며 살아온 유 사장. 과연 그가 10년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인터뷰=김형곤 글로벌증권부장/kimhg@heraldcorp.com

정리=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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