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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 있으면 간웅도 있다…CEO공백 리스크 직시하라
뉴스종합| 2012-02-29 11:21
‘영웅’이란 단어에서 ‘웅(雄)’은 ‘우두머리’ 또는 ‘가장 으뜸간다’는 의미로, ‘굳센 수컷새(隹)’란 뜻에서 비롯됐다. 맹수 같은 용맹함을 가진 인물에 쓰는 효웅(梟雄), 뛰어난 문호를 칭하는 문웅(文雄), 지덕(知德)이 뛰어난 성웅(聖雄), 부처를 뜻하는 대웅(大雄)ㆍ세웅(世雄), 단군의 이름인 환웅(桓雄) 등이 사용 예다.

하지만 ‘웅’이 들어간다고 다 좋은 뜻만은 아니다.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조조(曺操)는 ‘간사한 꾀에 있어 으뜸’이란 뜻인 간웅(奸雄)으로 불렸다.

이처럼 ‘웅’은 다양하다. 투자에서 ‘웅’은 ‘최고경영자(CEO)’로 번역되는데, 계량화하기 어렵지만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한다. 투자할 때 과연 CEO가 어떤 ‘웅’인지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최근 천억원대 횡령 의혹이 제기된 하이마트는 오랜 기간 선종구 회장 경영능력에 힘입어 유지돼 온 회사다. 그런데 만약 이번 혐의가 인정된다면 금액에 관계없이 CEO로서 선 회장의 생명은 거의 끝이다. 단순히 횡령이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에만 쏠리지 말고, 선 회장 이후까지 봐야 한다. 과연 하이마트의 기업가치를 지키고 키워 나갈 마땅한 후임자가 있을지, 또 매각작업은 미뤄지고 현 경영진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재 상황이 기업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유의해야 한다.

흥미롭게 선 회장의 상황은 옛 대우그룹 계열사 중 꽤 비슷한 사업을 영위했던 대우자동차판매를 떠올리게 한다. L 전 사장은 김우중 전 회장의 비서 출신으로 대우차판매 준(準)오너의 위치까지 올랐으나 결국 회사를 다시 워크아웃에 빠뜨리며 ‘폐주(廢主)’가 되고 말았다.

한화의 경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배임ㆍ횡령 혐의 공판 결과에 따라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자랑하던 김승연 회장은 효웅으로 불리던 그동안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 혐의가 인정돼 경영상의 공백이 생기느냐 여부도 중요하다. 한화그룹은 생명보험 부문 인수ㆍ합병(M&A), 태양광 등 신사업 추진과 관련된 굵직한 현안이 많아 김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의 부재는 악재다.

일단 검풍(檢風)은 비켜갔지만 최태원 SK 회장도 스스로 상당한 투자변수다. 가장 안정적인 SK텔레콤과, 가장 변동성이 큰 하이닉스라는 조합을 어떻게 상생시킬지는 오로지 그의 어깨에 달렸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지원에 인색해지고, 하이닉스가 SK텔레콤의 이익을 훼손하는 상황이 된다면 아무리 총수라 하더라도 영웅으로 대접받기는 어렵다. 정유와 이동통신업은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의 유작(遺作)이지만, 반도체는 온전히 최 회장의 신작(新作)이다. SK는 그동안 CEO 시너지를 가장 누리지 못한 그룹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최 회장의 하이닉스 경영은 중대한 시험무대다.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기존 주력사업 중 하나이던 정수기 사업(웅진코웨이)을 버리고, 전혀 다른 새 사업인 태양광과 건설에 승부를 걸었다. 채식동물(herbivore)에서 육식동물(carnivore)로의 변화에 비견할 만하다. 성공한다면 그룹의 재창립까지 성공시킨 성웅으로 자리매김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룹을 지키지 못한 ‘제웅(분수를 모르는 사람)’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삼성이다. 총수의 경영능력이야 탁월하지만, 형제 간 유산다툼 조짐으로 비경영적 부문에서 미묘한 변수가 부각되고 있다. 자칫 소송에 질 경우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배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재용 사장이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도가 깨질 수 있다. 차명계좌에서 에버랜드로 넘어간 생명 지분 규모까지 드러나면 경우에 따라 에버랜드의 생명에 대한 지배력도 동시에 떨어진다. 이맹희 씨 측 주장대로라면 차명으로 돼 있다가 일방적으로 에버랜드 명의로 변경된 삼성생명 주식은 현재 에버랜드 보유 지분의 90%에 육박한다.

설령 소송 결과 이 회장 측이 이기더라도 삼성전자가 애플과 자웅을 겨뤄야 하고, 반도체 업계의 건곤일척(乾坤一擲)까지 진행되는 고비에 총수 일가가 집안 내분으로 상당기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경영에 부담일 게 분명하다.

< @TrueMoneystory>/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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