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민간사찰 문건 검찰 재수사... ‘사즉생, 생즉사’?
뉴스종합| 2012-04-02 10:18
KBS 새노조가 공개한 2619건의 사찰문건이 ‘불법 민간인사찰 증거인멸 사건’의 핵심 규명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불법적인 민간사찰에 직접 개입했고,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를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직결되는 사안이다. 최대 현안이던 ‘윗선 규명’은 잠시 뒷전으로 밀렸다.

검찰은 고의로 감춘 자료가 아니라면서도 사실상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KBS 새노조도 성급한 발표에 실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수 조사를 통한 분석 자료를 금명간 새로 내놓겠다고 한다. 당초 사건의 최초 폭로자인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과 KBS 새노조의 합동 폭로로 수사초기부터 만신창이가 된 검찰 수사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안갯속이다.

▶검찰 “사즉생” 수사, 사찰문건 진실 가려낼까=대검찰청은 야권과 시민단체에 이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조차 권재진 법무장관의 사퇴 요구가 나온 시점에서 긴급 브리핑을 냈다. 요점은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조속히 진행해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검찰의 극한 위기감이 배어난다.

이와 함께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을 수사했던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은 첫 수사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철저히 내사했고, 일체의 축소나 은폐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 1팀에서 진행한 내사 121건 중 직무범위를 벗어난 23건에 대해 심층 조사를 벌였지만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내사를 기소한 2건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한날 시차를 두고 낸 이 같은 입장발표는 ‘1차 수사가 원칙대로 잘 이뤄진 것은 틀림없지만, 사찰문건이 의혹의 중심이 된 만큼 재수사는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향후 검찰 수사는 이제 막 발동을 건 민간사찰 증거인멸의 ‘윗선’ 추적뿐 아니라 사찰 문건에 대한 분석과 규명이 병행될 전망이다.

사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619건 중 노무현 정부 시절 작성된 자료가 2200여건으로 현 정부 작성 문건보다 더 많다’는 지적으로 한방 먹은 KBS 새노조가 일부 실수를 인정하고 오는 3일 문건을 전수 분석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찰 대상 중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이 몇명이었는지, 사찰 범위가 공직 업무를 벗어나 사생활 침해로 이어졌는지, 사찰 주체 현 정부인지 과거 정부인지 등에 대한 KBS 새노조와 검찰의 발표가 과연 어떤 차이를 보일지 주목된다.

▶2라운드는 추가 USB 존재여부와 내용=검찰이 이번 문건이 빌미가 된 ‘축소ㆍ은폐 수사’ 공세를 막아낸다 하더라도 아직 끝이 아니다.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야권이 청와대 반박에 대한 역공 차원에서 제기한 2개 USB 메모리의 존재 여부가 새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당 박영선 MB새누리심판 국민위원회 위원장은 “검찰이 권중기(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경정으로부터 이미 제출받은 USB가 있는데 이는 사건 수사를 하면서 이미 확보한 것”이라고 했다. 또 “장진수 주무관의 전임자인 김경동씨가 보관하고 있던 USB도 검찰이 갖고 있다. 이 두 USB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번에 KBS 새노조가 폭로한 2619건의 사찰 문건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에서 근무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된 김기현 경정의 USB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은 “이 USB 기록은 대부분 적법한 인사 및 직무 관련 문서인데 반해 다른 USB에 담긴 기록은 민간인 사찰 등 불법 사찰 기록이 많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설령 1라운드를 내주더라도 2라운드에 치중하겠다는 셈이다.

검찰로선 이 역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수사 자료를 외부 요구에 따라 공개하는 것은 수사주체로서 일종의 치욕이다. 또한 그 문건 자료를 통해 만약 검찰의 부실수사 정황이 드러난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다고 무대응하거나 거부할 경우 의혹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성난 민심과 야권 공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와는 별도로 사찰, 감찰 대상에 오른 인물들이 실명 또는 익명 거론되면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자 발생 등 별도의 문제가 불거질 우려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조용직 기자/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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