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키워드로 본 4ㆍ11 총선...이유 없는 이변은 없었다?
뉴스종합| 2012-04-12 08:12
이유 없는 이변은 없었던 것일까. ‘야권이 쉽게 이기는 싱거운 게임→초박빙 승부→새누리당 대승’으로 이어지는 ‘이변의 교양곡’에는 전주곡이 있었다. 선거 단골 메뉴인 ‘정권심판론’과 새로 메뉴에 이름을 올린 ‘위험한 세력-막말 파문’이 사실상 1대 1로 맞붙은 것이 상징적인 전주곡으로 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강원ㆍ충청권까지 포함한 보수 결집이 현실화했다. 이같은 보수 결집은 1996년 15대 총선 이후 16년만에 동서구도를 만들었고, SNS(소셜네트워크)의 가벼움(?)은 표심(票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한적이나마 통합진보당이 약진하며 저변 확대의 가능성을 보인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와함께 ‘새누리-민주통합당’의 양당체제가 굳건해지면서 ‘의회 권력’의 쏠림 현상이 완화됐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대목이다. 4대 키워드로 본 4ㆍ11 총선은 향후 대선의 기상도를 읽을 수 있는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수도권에 갇힌 2040=선거 초반만 해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는 ‘정권 심판론’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나꼼수’도 2040세대를 결집시키며 파괴력을 과시했다. 서울 한복판 시청광장에서 수천명이 모여 선거막판 펼쳐진 ‘조 퍼포먼스’는 2040과 SNS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서는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안철수 교수의 ‘앵그리버드’ 독려에도 불구하고 55%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성난 젊은이들이 투표소로 달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40세대의 반란은 수도권에 묶여 있었다.

장성호 배재대 교수는 “인증샷까지 허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54.3%에 머무른 것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실망하고 젊은층들이 수도권을 제외하곤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엔 반값등록금 등 식상한 메뉴로만 2040세대를 잡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분석도 나온다. 젊은층을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정책에선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야권의 경우에 2030에 어필할 수 있는 상식적 정책제시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청년실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진보에 맞는 구체적인 대안제시를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손에 쉽게 잡힐 수 있는 정책으로 설득을 했어야 했는데 막상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대표도 “SNS가 없었던 시절에도 70∼80%의 투표율이 나온 적이 많다”면서 “SNS가 정말로 위력이 있다면 투표율이 그 정도는 나와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SNS 등 가벼운 정치에 지나치게 여론이 휘둘린 감이 없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점에서 노원갑의 김용민 후보의 낙마는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고 박사는 “보통 수도권에선 30대가 야권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노원갑의 출구조사를 보면 30대에서 김 후보가 오히려 밀렸다”며 “막말파문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책변수의 실종=민주당이 선거 전면에 내새운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등 정책 변수들은 단순한 선명성 경쟁을 위한 구호에 그쳤다. ‘먹고 살기 바쁜데...’라는 민생문제가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 색깔경쟁을 부추겼고 보수의 단단한 결집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책변수의 파괴력이 ‘제로’였던 셈이다.

특히 정책변수가 지방으로 갈수록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서울 등 수도권과 호남,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당이 참패를 면치 못한 데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민주당의 이슈가 지역확산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며 “책임성, 신뢰성, 안정감이 같이 먹혀야 하는데 이슈 중심의 정권심판론이 지역까지 가려면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원택 변호사는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정책 차이가 거의 없었다”며 “정책 싸움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결국 색깔 대결로 갔다”고 진단했다. 신동철 새누리당 부실장도 “양당 모두 너무 진영중심으로 선거를 이끌다 보니 중간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저희 숙제는 진영에서 벗어나서 중간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진당의 약진 vs 선진당의 몰락=통진당과 자유선진당의 엇갈린 명암은 19대 국회, 더 나아가 대선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를 포함해 13석을 가져가는 성과를 거뒀다. 정당투표율도 10.3% 지난 18대 국회(5석) 보다 배 이상 몸집을 불리며 제3당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반면, 선진당은 텃밭인 충청권을 새누리당에 내주며 비례대표 포함 5석을 얻는데 그쳤다.

당장 야권연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통진당이라는 애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진당은 19대 국회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목소리를 키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그나마 야권연대를 버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진당의 입김은 좀 더 세질 공산이 커졌다.

정 교수는 “통진당의 (캐스팅 보트) 역할이 높아질 것”이라며 “원내교섭 구성과는 무관하게 3당으로서 통진당의 역할이 활성화되는 측면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들 양당의 희비는 당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배재대 장 교수는 “(통진당은) 정체성이 확실하고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SNS 세대에 맞는 투표전략 구사했다”며 “다른 정당들보다 좀더 좁은 의미의 정책적인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젊은 대학생들이나 젊은층들의 지지가 많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선진당은 이번 총선에서 활동성, 존재감, 특별한 정체성이 거의 없었다”며 “어떤 면에서 보면 선진당의 몰락과 퇴조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한석희ㆍ손미정ㆍ양대근 기자/hanimom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