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스스로 구해야 한다. 하지만 무지(無知)해서 구하지 못한 거라면 다른 얘기다. 지난 2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우리 사법당국의 피해자 신변보호제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중국 동포인 한 여성은 감금당한 채 성폭행을 당했다며 한때 연인관계였던 중국 동포 남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문제의 남성을 검거했고, 이 남성의 보복 범행을 우려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의 우려가 없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를 기각했다.
문제는 영장이 기각된 뒤 터졌다. 피의자인 남성이 경찰에서 풀려난 뒤 자신을 성폭행 혐의로 신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서울남부지법 관계자는 “영장실질심사 당시 두 사람이 애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사건 당일 여성이 남성을 찾아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통상적인 강간 사건으로 보기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고 영장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의 영장기각이 불행을 부른 단초가 됐지만 경찰도 할 말이 없다. 피해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낄 상황이었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가 신변보호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변안전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13조는 ‘일정 기간 해당 검찰청 또는 경찰서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신변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게 하거나 대상자의 주거지 또는 현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에게 신변안전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를 모르고 있다. 피해 여성은 중국 동포인 까닭에 이런 제도가 있었는지 더욱 몰랐을 것이다.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했는데 경찰은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일선 경찰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그럴 겨를이 있었겠느냐는 회의도 나온다. 무지가 목숨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건 불행이다. 법원, 검경 할 것 없이 사법당국은 더 늦기 전에 2차 범행을 예방할 피해자 신변보호에 더욱 신경써야 할 것이다. 사법당국의 존재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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