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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유현산의 장편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네오픽션)은 한국 범죄사상 가장 잔혹한 집단으로 기억되는 지존파를 모티브로 ‘세종파’라는 가상의 범죄집단을 상정, 90년대 사회적 모순과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학교 내 서열 2위이자 반항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서기표, 큰 덩치에 어릴 적부터 옆집 친구로 함께 놀았던 신정수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김다윗, 작고 왜소한 체격에 다윗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신정수, 그들보다 두 살 많고 예쁘장한 외모에 학교 서열 1위의 독한 싸움꾼 이세종과 시골에서 서울 변두리 인생으로 편입된 한동진의 초등학교 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만 오면 침수구역으로 변하는 안양천변 빈민촌 아이들은 냄새 나고 끈적끈적한 동네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혼돈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가 하면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세상과 거리를 벌여간다. 비열한 현실을 몸으로 체득하며 분노를 쌓아온 세종은 허무주의에 빠진 한동진을 제외하고 1993년 세종파를 결성한다. 이들은 조직의 단합과 범행자금 조달을 위해 납치, 강간, 살해를 일삼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가진 자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빼앗는 건 정의로운 행위라고 정당화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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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는 새로운 시대라는 게 규정되지 않았고 배꼽티, 야타족, 오렌지족처럼 도착적으로 다가왔어요. 당시는 80년대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는 데 익숙했지요.”
그렇지만 모든 범죄가 사회악에서 출발한다든지, 개인은 허수아비처럼 휩쓸려갔다는 식의 도식화는 위험하다는 게 유 씨의 입장이다.
잡지사 기자생활을 하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유 씨는 유영철 사건을 조사하다 지존파를 다시 보게 됐다. 소설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고치길 여러 번, 마지막엔 3인칭이던 게 1인칭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유 씨는 ‘살인자의 편지’로 2010년 자음과모음 제2회 네오픽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 씨는 “스릴러지만 우리 사회와 밀착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다음 작품으로 조선족 조폭 범죄를 다룬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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