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
지방자치 무너뜨리는 교과부
뉴스종합| 2012-05-08 11:27
교과부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서울학생인권조례 무효 선언
지자체 입법권한 무시 처사
충돌여부 판단은 사법부 몫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각 학교가 학생들의 복장, 두발 및 소지품 규제를 ‘학칙에 따라’ 시행할 것, 그리고 학칙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서 제정할 것을 요구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재미있는 것은 교과부가 더 나아가 교복, 두발, 소지품 규제 등에 대해 인권상의 제한을 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혹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학교에 복장, 두발 및 소지품 규제에 있어서 학칙에 따라 규율할 재량을 주는 반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이들 규제에 대해서 인권상의 제한을 가했으므로 상위기관인 중앙정부의 방침에 어긋나는 지자체법은 무효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지방자치를 헌법적으로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헌법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고 한다. ‘의회를 둔다’는 것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대표들이 지자체법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지자체법이 만들어진다면 그 자체로는 유효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중앙정부의 대통령이 발의한 명령만으로 지자체법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지방의회의 입법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및 독일의 각 주들, 프랑스 등은 모두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의 지시 또는 명령만으로 각 지자체의 법 또는 행정행위가 즉시 무효가 되는 일은 없다. 단지 지자체의 법 또는 행정행위가 중앙정부의 법 또는 행정행위와 ‘충돌할’ 경우 당연히 전자가 무효화된다.

하지만 충돌 여부는 사법부가 내린다. 그렇지 않고 중앙정부가 자의적으로 ‘저 법은 우리 법과 충돌한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내려서 지자체법을 재판 없이 무효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지방자치 원리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던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 학생인권조례가 객관적으로 교과부의 시행령과 충돌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교과부가 말한 대로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서 학칙의 제ㆍ개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서울, 경기, 광주 학생인권조례 모두 학칙의 제ㆍ개정에 관한 규정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또 교과부 시행령에는 인권조례가 조용히 다룬 복장ㆍ두발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결국 지자체 학생인권조례와 교과부의 시행령은 충돌하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교과부는 재판에 가서도 ‘시행령을 통해 학생이 학칙 개정 및 제정에 참여하기만 하면 학교의 생활지도정책에 있어서 재량을 준 반면 서울, 경기, 광주의 인권조례들은 생활지도에 있어 제한을 두고 있으므로 양자가 충돌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에 대한 전 세계의 판례들을 보면 중앙정부의 법을 그렇게 침입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충돌’ 여부의 시금석은 ‘과연 시민들이 동시에 두 개의 법을 모두 준수할 수 있는가’이다. 외국 판례들은 예외적으로 예를 들어 민항항공기 내의 여객석 규격 또는 원자력발전소의 규격 등과 같이 정책적인 이유로 중앙정부가 선점(preemption)했다거나 사안이 너무 민감해 중앙정부법과 지자체법 모두를 준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지자체법의 무효를 선언할 뿐이다(그것도 꼭 사법부가!). 이번 학생인권조례는 중앙정부가 선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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