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고졸 1기공채 ‘한편의 드라마’
600명서 700명으로 증원
인사팀장 이례적 공개브리핑
삼성이 놀랐다. 그리고 울었다. 삼성을 놀라게 하고, 울린 대상은 다름 아닌 ‘고졸(高卒)’이다.
이들 고졸은 삼성에 경탄의 울림을 전하고, 나아가 감동의 메시지를 줬다. 삼성발(發) 훈훈한 스토리 하나가 공개됐다. 고졸 채용에 관한 것이다. 삼성은 9일 그룹이 처음으로 주관한 고졸 공채 최종합격자를 발표했다. 700명이다.
삼성은 연초에 고졸을 올해 9000명 뽑겠다고 했다. 이 중 그룹이 주관해 처음으로 600명을 공채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이날 고졸 공채를 700명 뽑았으니, 계획과 달리 100명을 증원한 것이다. 이들은 삼성의 고졸 공채 1기. 삼성은 학력타파의 상징코드로 이들을 키우기로 했다. ▶관련기사 14면
100명을 더 뽑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시계바늘’처럼 정확함을 중요시하는 삼성이 목표치를 바꿨다는 것은 행간이 간단치는 않다. 게다가 그 이유가 ‘감동’에 있다는 것은 고졸 채용에 대한 재계,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좁은 인식에 재고(再考)를 요한다는 점에서 메시지가 묵직해 보인다.
삼성은 실제 고졸 공개채용을 해보니, 우수한 능력과 인생역정의 감동 스토리를 가진 인재들이 너무 많아 600명 선으로 자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의 학생들에게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증원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런 인재를 놓치면 아깝겠다’는 판단이 들어 채용 문호를 넓혔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의 고졸 채용 성공기(記)는 눈물겹고도 경이스럽다.
사무직 취업에 성공한 여모(28) 씨. 그는 부친의 사업실패로 수업료가 없어 고교 2년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검정고시로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10년간 해왔으나, 지금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하고 이번에 삼성 고졸 공채의 문을 두드렸다.
이모(에버랜드 조경전문직) 씨는 농촌에서 조경 관련 일에 종사하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식물과 농업에 관심이 많았다. 일찌감치 부친의 업(業)을 이어받을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는 그래서 조경학교에 진학했다. 에버랜드 선택은 준비된 것이었다.
원기찬 삼성 인사팀장(부사장)은 이날 고졸 공채 발표와 관련한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감동적이면서 올곧은 사연을 갖고 있고, 가치관이 뚜렷한 인재들을 어떻게 안 뽑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의 표정은 다소 들떠 보였다. 20만 삼성인의 인사를 총괄하는, 침착함과 냉정함이 트레이드마크인 그가 이런 표정을 보인 것은 그 역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 팀장은 “면접을 진행한 인사담당자들은 어리게만 보이던 고등학생들이 예의를 갖추고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하는 모습에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인재관, 즉 “항상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철학과 맞물려 있다.
어리다는, 지식이 짧을 수 있다는, 조직문화에 불협화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고졸 채용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자질과 능력, 잠재력을 세밀히 들여다볼 때 진정한 인재육성이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에 삼성이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삼성의 고졸 공채는 분명 마침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졸 채용 뒤 관리, 잠재력 발휘의 기회 확대, 승진 형평성 등 지금보다는 보완된 인사 시스템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다.
확실한 것은 삼성의 고졸 공채 확대는 재계에 미묘한 화두가 되면서 ‘고졸 다시보기’ 열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졸은 기업문화에 ‘건강한 반란’을 꿈꿀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했고, 기업은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신(新)채용문화의 뚜껑은 열렸다.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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