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가라앉고 물가는 날로 고공행진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생활비를 10원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쳤다.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들이 ‘이천쌀’, ‘삼다수’, ‘크리넥스’ 등 품목을 대표하는 보통명사가 된 상품들을 제쳤다는 것이 고물가 여파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PB상품 판매량을 살펴본 결과 생수와 화장지 등 생필품이 5위 내 상위권을 휩쓸었다. 자영업자들에게 필수품인 종이컵도 빠지지 않았다.
이마트에서는 20㎏ 분량의 ‘이맛쌀’이 PB상품 중 판매순위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우유와 화장지, 종이컵, 생수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쌀은 더 말할 필요 없는 생필품이고, 우유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주식에 준할 정도로 반드시 구매하는 상품이다. 아직까지 농심 ‘삼다수’의 아성을 넘진 못했지만 ‘이마트 봉평샘물’은 생수 품목 중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다른 PB샘물인 ‘블루’와 ‘아임수(I’m soo)’ 등도 PB상품 판매량 20위권 내에 들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홈플러스는 물, 화장지, 종이컵이 1~5위를 전부 채웠다. 1위가 생수, 2ㆍ5위가 종이컵, 3ㆍ4위가 화장지였다. 종이컵은 특히 1000개에 1만30000원 수준의 저렴한 가격 덕분에 식당이나 미용실 등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품목이다.
롯데마트는 생수, 바나나, 떠먹는 요구르트, 카스타드, 미용티슈가 차례로 1~5위를 차지했다. 다른 대형마트 보다 독특한 상품이 다소 눈에 띈다. 떠먹는 요구르트는 4개, 8개씩 묶음 포장이 된 상품 외에도 1000㎖의 큰 용기에 담아 수시로 덜어먹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상품군을 다양하게 했다. 롯데마트의 ‘카스타드’는 공교롭게도 롯데제과의 작품을 PB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제품의 맛과 상품명 글씨체 등 포장까지 비슷하다. 가격은 롯데마트의 PB상품이 행사 중인 가격을 기준으로 일반브랜드(NB)제품보다 40% 가량 저렴하다.
대형마트 관계자들은 생수나 화장지 등 생필품이 PB상품 판매 상위권을 휩쓴 것이 깊은 고물가의 파고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입을 모은다. 물이나 화장지 등은 NB와 PB간 품질 차이가 도드라지지 않는 반면 가격은 PB상품이 최고 50%까지 저렴하다. ‘이마트 봉평샘물’은 2ℓ짜리 6개를 묶은 상품 가격이 2750원으로, ‘농심 삼다수’(5460원)와 비교하면 50%나 값이 저렴하다. 롯데마트의 떠먹는 요구르트도 8개 들이 상품 가격이 2860원. 빙그레의 ‘요플레’ 4개 묶음 상품(2540원)을 2개 샀을 경우와 비교하면 40%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또 물, 화장지 등은 가정에서 소비가 끊이지 않는 품목이다. 때문에 저렴한 PB상품을 선택할 경우 가계 부담은 날로 가벼워지게 마련이다. 가계 부담 앞에서 브랜드나 제품 이미지, 품질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고려는 크지 않았다. 때문에 PB상품의 매출은 날로 상승세다.
이마트에서는 NB상품 매출 신장률이 1자릿수인데 비해 PB 상품은 지난해에 비해 15.2%나 신장할 정도로 매출이 오르고 있다. 양곡 품목에서는 이마트 PB제품이 전체 양곡 매출에서 35%를 차지하며 NB상품들을 제쳤다. 우유도 전체 매출 중 13%의 구성비를 보일 정도다.
이 같은 PB상품의 상승세에 힙입어 대형마트는 실속형 PB 상품의 비중을 더 늘리고 있다. 롯데마트는 이달 말까지 새롭게 선보이는 PB상품 235개 중 실속형 브랜드인 ‘세이브 엘’ 상품을 111개나 출시했다. 전체 PB상품 중 초저가인 ‘세이브 엘’이 5%, 중저가인 ‘초이스 엘’이 89%, 고급형인 ‘프라임 엘’이 6%를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속형 상품의 구성비를 대폭 늘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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