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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소비자 선택권을 빼앗는 대형마트 영업제한/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
뉴스종합| 2012-05-22 07:37
제조업 중심의 우리 경제에 유통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과거 봇짐을 메고 가가호호를 돌며 물건을 팔던 때로부터 시작한 유통업에 5일장, 상설 재래시장, 수퍼마켓 등의 단계를 거쳐 대형마트 시대가 등장했다. 대형마트의 등장은 유통업계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였다. 소비자들은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위생적인 포장과 원산지 표기로 식탁 문화는 한단계 발전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형마트 간 경쟁도 치열해져 업계는 유통단계를 줄여 더욱 값싼 상품과 더 많은 편의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자체브랜드(PB) 상품이 등장하는 등 소비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고 인터넷쇼핑 체계 구축으로 시ㆍ공간의 제약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고물가시대,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소비패턴은 자연스레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또 대형마트들은 지역주민들, 특히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한 주부, 청년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지자체들이 실시하고 있는 대형마트, SSM 강제휴무제를 보면 정작 시장의 주체인 소비자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는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의 고객을 빼앗고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의 행동을 매우 단순한 행태로 인식한 발상에 기인한 것이다. 현대인들의 소비는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문화와 편리성 등 복잡한 선호체계가 결합돼 나타난다. 대형마트를 강제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게 한다고 해서 라이프스타일로 정착된 구매패턴을 바꿀만큼 단순한 소비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골목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결국 수많은 근로자와 입점 상인, 납품업체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영업일수 축소로 대형마트는 인력조정 압력을 받게 되며, 마트 내 입점한 음식점, 약국, 꽃집 등 중소상인들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납품업체, 특히 신선식품을 공급해 온 농어촌 가계에 전가되는 손실도 만만치 않다. 실제 월 2일의 대형마트 영업 제한이 농가에 주는 피해만 연간 6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마트 휴무로 인한 효과가 골목상인들의 매출증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없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반사이익을 본 것은 동네 준대형마트와 백화점이다. 골목상권은 결코 대형마트의 대체시장이 아님이 입증된 것으로,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는 결국 유통 생태계에 큰 혼란만 가져온 셈이 됐다. 이는

‘영세상인 보호’라는 명분에 매몰돼 시장원리와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정치권이 초래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소비자 편의와 관련 주체들의 피해를 도외시한 규제는 결국 유통업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킬 뿐이다. 이런 근시안적 규제보다는 대형마트, SSM과의 차별화를 통해 소비자들이 스스로 골목시장을 찾아가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시장은 소비자가 선택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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