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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로스쿨 교수가 말하는 남성의 은밀한 욕망
라이프| 2012-05-24 08:05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중년 남성들이 성, 욕망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의 ‘스캔들’에나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조심스레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으로 남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정운 명지대 교수, 최근 소설과 영화 ‘은교’로 화제를 불러모으는 소설가 박범신이 “내 안에 욕망이 있다”고 드러내 말하면서, 남자들이 자신들 안에 숨겨진 욕망에 마치 면죄부를 얻은 듯 털어놓고 싶어한다. 여기에 검사 출신의 김두식(47) 경북대 로스쿨 교수가 가세했다. 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를 통해 중년 남성들의 은밀한 욕망을 그 자신의 고백 형식을 통해 털어놨다. “내 안에도 사랑하고픈 소년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뭔가 빠져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왠지 쓸쓸하다. 좋은 걸 표현하지 못하도록 선 긋는 사회, 스스로가 답답하다. 김 교수는 그걸 ‘색’(色)과 ‘계’(戒)의 세계로 나눈다. 그리고 이젠 ‘색’의 세계로 좀 나와도 되지 않겠냐고 권한다.

주중 대학 강의 때문에 대구에 머물고 있는 김 교수는 기자와 e-메일 인터뷰에서 “44살, 삶이 참으로 무료하게 느껴졌다. 꽉 막힌 ‘계’ 안에서 모범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새로운 글쓰기, 즉 고백적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반란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 또래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숨 가쁘게 달려 겨우 안정된 지위를 얻었는데 마음 한구석은 텅 빈 느낌.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좋겠는데, 가정은 이미 자녀들의 대학 입시를 위한 프로젝트 팀처럼 변해버렸고. 남자든 여자든 다들 외로운 거죠. 그 외로움의 틈에서 스캔들이 싹트고요. 기회만 주어진다면 거의 예외가 없을 거라고 봐요.”

김 교수는 ‘신정아 스캔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중년 남성의 욕망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변양균 씨는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중년의 초상일 뿐이란 것. 그는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 충분히 섹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분출해야 할 시기에 너무 규범에 갇혀 살아온 탓으로 중년의 억눌림과 일탈을 해석한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에는 여전히 충분히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이 남아있는 사랑이란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그 자신도 ‘똥아저씨’ 변양균씨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고백한다.

특히 신정아의 고백을 담은 책 ‘4001’은 변양균 씨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 즉 ‘사냥꾼’의 시각과 사랑도 제대로 못하는 전직 총리 같은 지분거림 등 우리 전체의 얼굴이 들어있는 공부거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상하이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불타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늘 안전을 원하는 성공한 남자들의 이중심리도 짚어낸다.

김 교수는 고백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의 바닥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계’의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면서도 왜 늘 이렇게 ‘색’의 문제로 고민하는가를 살펴본 거죠. ‘문화적’인 억눌림도 얘기했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저’의 억눌림이었고요.”

김 교수는 요즘 TV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충격적인 고백이 주류를 이루는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상에서 고백이 거의 없는 게 우리 문화예요. 밤새 함께 술을 퍼마시면서도 깊은 속마음을 나누지는 않죠. 그래서 다들 고독하고요. 여성보다 남성이 더 그래요. 그런 점에서 연예인들이 주도하는 선도적 고백도 의미가 있죠. 다만 제 글을 포함해서 매체를 통한 모든 고백은 상당히 걸러진 내용일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고백이 진짜죠. 제 책이 그런 ‘일상의 고백’을 만드는 기폭제가 됐으면 해요.”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털어놓은 뒤 그의 주변에 변화가 생겼다. “친구들이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엄청난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왜 그런 얘기 안 했냐고 물으면, 말해봐야 제가 알아들을 리 없어서 못했다고들 해요. 덕분에 저도 시야를 넓혔고 아, 모든 인간에게는 이런 숨겨진 면이 있구나 하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동안 세상의 모범생으로 ‘계’의 세계에 머물러온 김 교수는 요즘 ‘색’ 쪽으로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여전히 성문을 빼꼼히 열고 조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소심한 행보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선을 넘어본 사람들 중에는 자기 경험을 통해 이웃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경지에 이른 독특한 분들이 있어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무의식의 바닥까지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평생 자기 욕망을 누르고만 살아온 사람들은 겉으로는 남을 이해하는 척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인간이 다 부족한 존재잖아요. 실수하고 용서도 구하면서 사는 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김 교수가 욕망에 주목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다움으로 통한다. 자기 바닥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되면 남도 얼마쯤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이는 남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희생양 양산구조를 깨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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