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고갱을 닮았다…그러나 우리네 고향의 ‘흙’과 더 가까운…
라이프| 2012-05-29 10:00
수채화·유화 넘나들며
치열하게 향토색 추구

일제강점기 고뇌했던
39세 요절 천재작가
그의 남다른 미술여정


화가 이인성(1912~50)은 강렬한 색채와 탁월한 기법으로 한국 근대미술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거둔 작가다. 그는 세잔이며 고갱의 작품을 끈질기게 연구 모방했으며, 이를 토대로 작업을 연마했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던 것은 향토색이었다. 서양그림의 영향이 그림에 언뜻언뜻 남아있으나, 이인성은 끝까지 대구, 아니 조선의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혼을 바쳤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로 해바라기와 옥수수, 사과나무와 화초들이 어지러이 피어있다. 가을이다. 그런데 그 옆에는 반라의 처녀가 바구니를 낀 채 소녀를 앞세우고 서있다. 이인성의 대표작 ‘가을 어느날’이다. 1934년 도쿄에서 열린 제13회 선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이 그림은 수수께끼가 많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청명한 하늘, 나무와 꽃은 분명 가을이건만 여성은 젖가슴을 드러낸 채 화폭 밖을 응시하고 있다. 여름과 가을, 현실과 초현실, 원시와 현대가 한 화면에서 혼재하는 이상야릇한 작품이다. 붉은 인물과 때묻지 않은 원시는 고갱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작품에 대해 미술사가들은 “고갱에서 영향을 받긴 했으나 이 땅의 생명과 인간의 원초성을 그린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자화상, 1950.

엄혹하기 이를 데 없던 1930~40년대 일제강점기에 풍요롭고 상징적인 회화로 한국 근대기를 기름지게 했던 화가, 이인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은 ‘鄕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을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8월 26일까지 연다. 근대미술계 대표 화가 이인성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한 이번 전시는 ‘천재화가’ ‘아깝게 요절한 작가’로 막연하게 논의됐던 고인이 남긴 사료와 작업을 공모를 통해 일제히 수집해 연구함으로써 그의 남달랐던 여정을 재정립했다.

푸른 하늘과 반라의 처녀가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인 성 의 1934년 작 ‘가을 어느날’. 청명한 하늘, 옥수수는 가을이지만 옷차림은 한여름이어서 수수께끼를 품은 작품이다.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은 수채화, 유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양풍의 그림을 그렸으나 향(鄕), 즉 고향의 흙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향토를 찾아서’ 같은 글에서도 밝혔듯 이인성에게 ‘향토’는 고향 대구이자 조국 산천이었다. 이번 전시는 근대기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예술가를 ‘가슴’으로 만나는 자리다. 그의 사진과 수집했던 도서와 엽서 등 작가의 숨결이 배어있는 사료를 통해 삶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고인의 지향점과 서구·일본미술과의 영향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이인성은 대구 화단을 풍미했던 수채화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작가였다. 일찍이 공모전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 1931년부터 5년간 일본에 체류했고 이후 서양식 건물, 실내, 정원풍경 등을 짧고 단속적인 붓질, 뛰어난 색채감각으로 과감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인성은 전성기에 이르러 조선향토색을 치열하게 추구했다. 조선의 정조(情調)를 표현하기 위해 매진한 그는 ‘경주의 산곡에서’(1935) ‘해당화’(1944) 같은 걸출한 대작을 남겼다. 인물과 풍경의 뛰어난 조화, 부드러운 화면 구도로 상징적인 화면을 만들었던 것. 박수진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이인성이 불의의 사고로 향토색 있는 작업을 좀 더 뚝심있게 펼치지 못한 점이 우리 화단으로선 못내 아쉬운 요소”라고 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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