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인간이란, 이리도 외로운 것을…
라이프| 2012-05-29 10:02
인간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루이스 부르주아 조각‘ 무제’, 1947~49.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지난 2010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한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미국)는 ‘거미작가’로 불린다.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워싱턴DC의 국립조각공원, 일본 롯본기힐스의 모리미술관 앞뜰에 세워진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Maman)’ 때문이다. 길고 긴 발가락을 곧추세운 한 쌍의 거미는 장관이어서 한번 본 사람은 잊기 어렵다.

현대미술사에서 ‘최고의 여성조각가’로 꼽히며 전 세계에서 회고전이 줄을 잇고 있는 부르주아의 초기 작품과 말년의 완숙미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작품전이 소격동 국제갤러리(3관)에서 개막됐다. 6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 타계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부제인 ‘Personages(저명인사)’는 부르주아가 1945~1955년에 작업했던 추상화된 인물조각으로, 기다란 막대형의 조각은 저마다 누군가를 상징하고 있다. 이번 한국전에는 ‘Personages’ 연작 13점이 나와 관람객들은 기다란 청동조각 주위를 찬찬히 걸으며, 조각의 물질적 현존뿐 아니라 조각과 공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19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38년 미술사학자인 미국인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 작가는 프랑스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조각으로 재현해 옥상에 세워두고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타피스트리를 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괴롭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곤 그 울분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작가는 “예술은 나에게 치유이자 구원”이라며 여성과 모성, 가족과 집이라는 주제를 끈질기게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즉 조각은 물론 회화, 드로잉, 설치, 손바느질 작업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자유의지를 반영한 밀도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부르주아의 대표적 후기 연작인 ‘밀실(Cells)’은 ‘가족’과 ‘집’이라는 주제를 인체 파편과 오브제를 결합해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설치작품이다. 커다란 철장으로 이뤄진 밀실은 ‘보호와 억압’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지닌 ‘집’의 이중적 의미를 은유한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내밀한 사적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부르주아의 초기 대표작과 말년작이 나란히 걸림으로써 작가의 작업세계 변화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02)735-8449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