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방‘ 패션왕’서 재벌2세役 완벽소화 이제훈
나락 치닫는 인물에 연민도
고지전·건축학개론서 깊은 인상
“장르·역할 안 가리고 도전할 것”
“정재혁을 ‘백마 탄 왕자’ 같은 전형적인 재벌2세 캐릭터로 연기하긴 싫었어요. 배우가 비호감으로 낙인찍히는 게 좋지는 않지만, 극 초반엔 오히려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으면 했죠. 그런 모습을 통해서 변화되고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길 바랐어요.”
지난달 종영한 SBS 월화극 ‘패션왕’에서 패션회사 후계자 정재혁 역할로 첫 드라마 주연을 맡은 배우 이제훈(28)은 인터뷰 내내 마치 정재혁이 된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는 정재혁을 “겉으로는 너무 냉정하고 차갑지만, 내면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젊은 청춘”이라며 “점점 나락으로 치닫는 인물이어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고,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멍했다”고 했다.
그가 연기한 정재혁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성공에 집착하는 재벌 후계자로, 단순한 악역이 아닌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로 표출됐다. 시청자들은 이제훈의 연기에 대해 “훈남을 거지같이 만드는 재주가 있다” “여성팬들의 모성애를 자극한다”며 호평했다.
이제훈은 지난 2007년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해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지난해 영화 ‘고지전’에서 어린 나이에 중대를 지휘하는 대위 신영일로 분해 전쟁의 광기를 강렬한 눈빛 연기로 인상을 남겼고, 올해 영화 ‘건축학개론’에선 풋풋한 스무 살 대학생 승민으로 변신해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고지전에 앞서 개봉한 영화 ‘파수꾼’에서는 내면의 아픔을 지닌 반항아 기태 역으로 충무로에 눈도장을 찍었다. 그 결과, 지난해와 올해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등에서 신인상을 6개나 받으며 가장 ‘핫(hot)’한 남자배우로 급부상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드라마 연기에 도전했을까.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싶었어요. 매체를 가리면서 연기하다 보면 새로운 환경에서 두려움이 클 것 같아서요. 잠을 못 자는 것은 기본이고 스케줄도 고됐죠. 후반으로 갈수록 대본을 해석하는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풋풋한 대학생 승민과 재벌2세 정재혁,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사실 ‘고지전’ 때는 괜찮았는데, ‘건축학개론’에 이어 ‘패션왕’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 체력이 달렸어요. 몸무게가 4~5kg이나 빠졌죠. 승민과 재혁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판이해서, 그런 부분만 납득이 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이제훈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어요.”
이제훈은 승민에 대해 얘기할 때는 얼굴이 밝아졌다. 그에게 승민은 ‘사랑과 이성에 대한 감정을 모르고 자랐다가 갑작스럽게 겪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고백할지도 몰라 하는 수줍음 많고 행동이 조심스러운 인물’이다. 이런 승민을 연기할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 나중에 기쁠 것 같다고 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생명정보공학과)를 다니다가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이제훈. 인터뷰 내내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캐릭터에 몰입된 모습을 보여준 그가 꿈꾸는 배우의 모습이 궁금했다.
“배우가 되자고 결심했을 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모든 것을 걸고 성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극장 포스터에 이제훈이라는 얼굴이 있을 때, 이제훈이 찍은 영화라면 한번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이제훈이라는 브랜드 자체로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올 추석께 개봉을 앞둔 영화 ‘점쟁이들’에서 공학박사 출신의 엘리트 퇴마사 ‘석현’으로 변신할 이제훈은 앞으로 액션, 스릴러, 로드무비, 변호사, 첩보원 등 해보고 싶은 장르와 역할이 너무 많다며 눈을 반짝였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