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의 소년책사’ 중량감 여전
실제 그는 물러나면서도 ‘책임진다’는 말은 하지 않고, 대신 ‘대통령께 누가 돼 죄송하다’고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밀실ㆍ꼼수 추진에 대한 책임보다는 한ㆍ일 군사협정의 배경이 ‘친일’이란 비난 때문에 한 발 물러섰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그는 2001년 논문에서 “(일본) 자위대가 주권국가로서의 교전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영원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대단히 편협하다”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장관급 이상의 문책을 기대했겠지만, 그가 가진 권력의 무게가 장관이나 총리 이상이니 권력핵심의 문책이라 할만도 하다. 어쨌든 그의 사퇴로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장관, 김관진 국방장관 등 국무위원들은 문책의 칼날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과 대통령후보였던 시절부터 ‘소년책사’로 불리며 최측근에서 보좌했고, 정권 출범 후에는 MB 외교안보정책 ‘그 자체’였다. 정치는 이상득, 경제는 강만수, 외교안보는 김태효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그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시절 그를 경질하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임 실장님이 나를 자를 수 있나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인 그는 철저한 한ㆍ미동맹 신봉자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한ㆍ미ㆍ일 3자 동맹의 추종자다. 현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도 그의 선택이었다. 외교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도 그의 손때가 뭍어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그리고 지난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작품에는 늘 ‘불통’의 비난이 따랐다. 그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소통보다는 불통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점에서 ‘주군(主君)’인 이 대통령을 빼닮았다. 이번 한ㆍ일 정보협정 미공개 체결이 논란이 된 후에도 그는 ‘며칠만 얻어 맞으면 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쯤되면 소통령(小統領)이자, 불통령(不通領)이라 할 만하다.
일단 그가 물러났지만, 그가 주물러 온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기획관을 위해 만들어진 대외전략기획관의 후임도 없다. 외교부 실무선에서 문책 인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외교수석, 외교장관, 국방장관 등 그를 뺀 외교안보 핵심라인은 그대로다. 청와대와 정부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ㆍ일 정보협정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된 미국과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도 진행형이다.
‘기획관 김태효’는 이제 없지만, 여전히 그는 대통령의 장자방이고 제갈량이다.
<홍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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