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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왜 치떨리는 배신보다 나쁜가
라이프| 2012-07-06 10:38
도덕·상식 벗어난 듯한 법
레오 카츠 교수, 법 모순 해부

장기거래·조세회피·투표조작 등
흥미롭고 다양한 일상사례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내


내가 베푼 은혜를 잊고 나를 배신한 사람과 내 시계를 훔쳐간 사람 중 누가 나쁜 사람인가? 좀도둑을 당하는 것과 배은망덕을 당하는 경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좀도둑 한 번 당하고 말지’하며 배은망덕을 더 나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법은 좀도둑은 처벌하지만 배은망덕은 처벌하지 않는다.

돈이 많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증여한 다음 다시 그 돈을 아들로부터 빌린다.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이자를 매년 지불한다. 그 이자만큼의 돈을 매년 주면 될 텐데 이런 복잡한 방법을 왜 쓰는 걸까. 잘 알려진 대로 증여세를 적게 내려는 꼼수인데 이런 법의 허점을 고치지 않는 건 왜일까?

법은 때로 우리의 상식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소한 범죄는 처벌하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이 왜 우리의 도덕과 상식을 배반할까?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데도 왜 그대로 둘까?

법학자 레오 카츠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교수는 ‘법은 왜 부조리한가’(와이즈베리)를 통해 법의 불편한 진실을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법의 형평성을 따질 때 비난의 화살을 제도적 문제나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 문제로 돌리지만 그는 다르다. 카츠 교수는 법의 모순과 부조리 문제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이다. 그는 이를 논리적인 문제로 본다.

그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열쇠로 든 것은 사회선택이론이다. 다수결 투표의 모순을 논리적, 수학적으로 규명한 이 이론은 셋 이상의 후보군 중 둘만 떼어놓고 선호를 가를 때 일어나는 논리적 모순을 보여준다.

즉, 세 후보의 선호도가 A, B, C 순으로 높다고 해서 A후보와 C후보의 선호를 가를 때 꼭 A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와 상관없는 작은 정보 하나로 C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법정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창조물은 그 무엇이든 완전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입법기관이 제정한 법이든, 판례에 따른 법이든 간에 인간이 만든 법은 실제 근거보다 과잉 규제 혹은 과소 규제하는 불일치를 보인다.” (본문 중)

저자는 법정에서 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최종 결론이 나는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판결하는 데 고려해야 할 셋 이상의 기준과 대안을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순간 완벽한 선택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을 어떤 이유로 포기하거나 금지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들려준다.

저자가 제시한 응급실 상황은 대부분의 거래가 발생하는 상황에 비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유용하다.

의사가 한 명밖에 없는 응급실에 사고로 다친 부부가 실려온다. 남편은 두 다리를 모두 잃을 수 있는 중태고 부인은 집게손가락 하나를 심하게 다친 상태다. 남편은 의사에게 두 다리 치료를 포기하고 대신 피아노 치는 것이 삶의 희망인 부인의 손가락을 치료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의 치료권리를 양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다리 한쪽을 다쳐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들어온다. 마지막 환자는 손가락처럼 경미한 치료를 할 바에야 더 위중한 다리를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을까. 저자는 ‘응급순위순환론’이라 명명한 이런 상황극을 법적 문제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변화시켜 보여 준다.

저자는 요구와 욕구, 이익과 선호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X가 어떤 것을 Y보다 더 강렬하게 욕구한다고 해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Y보다 더 강력하게 권리 주장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법은 왜 장기거래와 같은 상생거래를 거부하는지, 왜 허점투성이인지, 또 왜 그렇게 이분법적이고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 않는지 궁금증을 풀어준다. 특히 조세 회피, 투표 조작 등 법의 허점을 이용한 사례, 문학작품에 나타난 악행의 비범죄화 사례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제시해 답답하고 때로 분통터지지만 접근불가로 여겨온 법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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