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가와 국민, 경제민주화 너머
뉴스종합| 2012-07-19 11:50
땀흘린 산업화, 피흘린 민주화
너머 눈물의 예의, 사랑, 배려
품는 문화 강국이 우리 갈 길
대선 주자 누구든 관심 가져야


여야의 대선 주자들은 하나같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 국민 행복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누구도 문화강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특히 유력한 대선 후보자인 여당 박근혜 의원이 지난 10일 대선 출정식에서 당선하면 국정 운영기조를 ‘국가’ 위주에서 ‘국민’ 위주로 바꾸겠다고 열창한 것은 찜찜하다. 국가와 국민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가. 국가 기본 구성요소로서 영토와 국민은 필수다. 국가가 국민보다 상위 개념인 것 같지만 국민 없는 국가 없다는 사실로 볼 때 둘은 거의 동일 선상 개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부강한 국가 건설을 들먹이며 국민 희생을 강요한 사례가 없지 않다. 부당한 세금, 노동력 착취, 인권 탄압 등은 물론 일반 생활에서의 국가 충성 행위에 대한 강요가 많았다. 길 가는 행인에게 일정 시각 국기에 대한 거수경례, 애국가 봉창을 하게 한 것은 국가 과잉 충성 행위였다. 오늘의 재벌 형성도 부족했던 국내 자본을 일부 기업인에게 몰아준 결과다. 국부 증강이 최우선 순위였다.

그러니까 얼핏 ‘국민 먼저’ 슬로건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돌아보라. 87년 민주화 조치 이후 한국은 민주주의를 파는 개인 이기주의가 지나치게 커졌다. 극성을 부린 결과는 국가 발전 역행이다. 단 몇 사람 종교인들, 친북주의적 인사들의 인권, 환경 주장에 국가 공권력이 맥없이 무너져 세금 낭비를 초래한 게 그 얼마인가. 천덕꾸러기 쓸모없는 비행장, 도로, 항만 등이 이곳 저곳 생겨났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광우병 파동 때 국가보다 국민을 더 생각한다는 듯 맥 놓고 대처하다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후보는 이를 또 판박이하려 한다.

경제민주화 논쟁은 더 황당하다. 여야가 경쟁적이다. 누가 더 강도 있게 부르짖느냐가 관심사다. 해묵은 헌법 조항을 들춰내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낸다. 당초 경제에 정치와 관권 개입을 막으려 제정한 법 취지가 지금은 재벌 해체로 비약했다. 공정한 세금 부과와 공정거래 강화로 충분한 기업 감시를 뿌리부터 수술하겠다고 야단이다. 과거 동화은행 2억원 수뢰사건으로 징역형을 살고 나온 김종인 전 의원이 경제민주화 판의 주역이다. 그가 87년 헌법 개정 때 119조에 이 조항을 넣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뢰 당사자를 오뚝이처럼 모셔다 쓰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사람 주장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정치판이 가관이다.

차라리 산업화, 민주화 이후 한국의 갈 길을 문화강국에서 찾는 게 낫다. 요즘 인문학 인기 강사인 이어령, 신영복 교수 등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땀 흘린 산업화, 피흘린 민주화라면 눈물 흘리는 문화는 공동체의 생명 공감과 공생의 원리를 제시한다.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가야 할 길이다. 특히 문학, 그중에도 최고의 언어인 시를 많이 읽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시적인 대화, 시적인 경영, 시적인 소통은 남을 배려하는 고급 문화사회를 일굴 수 있다. 중국이 돌연 G2로 비상한 데는 저임금과 일당독재라는 체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등교 졸업 때까지 무려 시 300수를 암송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자의 시경(詩經)이 왜 세계의 고전이 되었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인ㆍ기업인은 문화에 관심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폼 나는 음악회, 돈 되는 미술 경매 등에 참여하는 정도다. 문예지에는 단돈 몇푼 지원도 꺼린다. 그러면서 시조를 읊조리던 집안 조상 자랑은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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