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올해 대선 정국 역시 검찰이 쥐락펴락하게 됐다. 정권 말, 정권 초 어김없이 찾아오는 ‘검찰의 계절’이 바야흐로 찾아온 것이다.
예측불허의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검찰 수사는 크게 2건.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인사가 지난 4ㆍ11 총선에서 공천장사를 했던 사건이 검찰에 넘어갔고, 야당 사령탑인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구명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공천비리 수사 결과는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 후보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고, 박 원내대표의 수뢰혐의는 야권 전체의 대선구도에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올 대선 구도도 검찰이 휘두르는 ‘칼춤’에 따라, 덩달아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역대 대선 결과가 검찰수사에 따라 갈린 경우는 가장 가까이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사건’에 대해 검찰은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단 한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BBK 수렁속에서 고전하던 이 후보는 기사회생했다. 또다른 수사의 핵심이었던 ‘도곡동 땅의 주인’에 대해선 ‘제3자의 것’이라고만 밝혀 부실 수사 논란도 빚어졌다. 야당은 ‘봐주기 수사, 면죄부 수사’라며 공세를 폈고, 당내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2년 대선에서도 검찰은 ‘병풍’ 수사로 대선 정국을 주도했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정연씨와 수연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던 사건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고, 이 후보의 측근 이형표씨가 두 아들의 병역 면제를 위해 애쓴 것으로 확인되면서 검찰이 대대적인 계좌추적에 착수하기도 했다. 결과는 첫 폭로자 김대업씨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허위사실로 판명났지만, 대선은 이 후보의 패배로 끝난 뒤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97년 대선에선 ‘DJ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한달여 앞둔 10월 당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DJ비자금 폭탄을 터뜨렸다. 김 전 대통령이 600억여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고 62억원 가량을 불법으로 실명전환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했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김태정 검찰총장 역시 전격적인 수사불가 방침을 밝혔고,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대선 정국은 마무리 지어졌다.
현재까지의 상황만을 봤을 때 12월 대선도 검찰의 수사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한달동안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체포동의안’ 논란의 처음도 검찰이었고, 박 원내대표에 대한 불구속, 구속 기소 등 신병처리의 키도 검찰이 쥐고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까지 보태지면서 여야 모두 검찰의 수사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역대 대선정국에서 검찰은 항상 정치적 판단을 해왔다“면서 ”정치권에 원죄가 있지만, 검찰권의 남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잔뜩 오염된 사안이 민감한 시기때마다 검찰로 넘어온다“면서 ”아무리 중립적으로 수사를 해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쓸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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