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사랑은 운명보다 빨리 달린다
라이프| 2012-08-10 09:11
아주 오랜 기다림이다. 작가 심윤경의 8년만의 전작 장편소설<사랑이 달리다>(2012.문학동네)는 기다리던 사람들에겐 단비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선사하는 그는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서른아홉이란 나이에 처음 돈을 벌어보는 '혜라’. 작가는 주인공과 함께한 시간을 이렇게 소회한다.

“혜나와 함께 달렸던 지난여름, 나는 모든 공과금을 연체하고 통장을 부도냈다. 그녀는 마하 39로 달리는 여자다. 그녀와 함께 일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뿐이다. 달리기 실력.(중략) 혜나가 다시 달린다. 살짝 미친 저 여자는 점점 더 빨라진다. 나도 지체 없이 달려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마하 40으로 달리고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부모의 황혼 이혼. 세 남매에게 닥친 시련은 정신적인 충격이 아니었다. 삼·사십대 중후반을 향해가는 삼남매가 그간 펑펑 써온 ‘아빠 카드’가 사라진 것. 그들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흔들림을 겪어야 했다.

이야기는 서른아홉 주인공 김혜나와 두 오빠, 그녀의 남편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를 둘러싸고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작품 가운데 가족을 정의하는 묘사가 인상깊다.

‘우리는 공항에서 정말로 일가족처럼 화목하게 식사를 했다. 아니, 진짜 피를 나눈 가족의 식탁은 그렇게 존경과 사랑이 흐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의 식탁을 지배하는 것은 오히려 불만과 권태에 더 가깝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징그럽게 잘 알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일화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갈 능력이 안 되는 자’, ‘사업에 실패해도 겉치레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공공연하게 많이 들어본 뉴스거리들이다.

책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을 말한다. 얼토당토않은 일들 가운데에서 그 무모함으로 더욱 매력적인 혜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순수한 여자로 비쳐진다. 사회제도로부터 벗어나 외곽을 달리는 여자. 비난과 경멸을 받기도 전에 지나쳐버리는 무서운 달리기 능력은 결국, 사랑을 얻어낸다.

<사랑이 달리다>는 작가의 솔직하고 대담한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독자들은 천지분간 못하는 주인공의 행보에 어느새 작품으로 빠져든다.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그녀와 함께 달려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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