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들 싸움
교양있게 화해하는 듯 하지만
서로 숨겼던 콤플렉스 드러나자
한시간도 안가 육두문자 남발
결국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져…
애들 싸움이 문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왕따’니 ‘자살’이니 ‘집단괴롭힘’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사건이 터지는 요새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얼굴에 작은 생채기 하나에도 조바심 내는 부모들이 많을 테지만, 예전처럼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많은 영화가 애들 싸움에서 기성 세대의 욕망을 봤고 현대 사회의 그늘을 읽었다. 천사와 악마를 오가는 인간의 얼굴을 봤고 인류와 세계사의 폭력적 본성을 발견했다. 셰인 메도우스 감독의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1980년대 한 무리의 불량배 사이에 낀 12살배기가 크고 작은 싸움을 벌여가는 모습을 통해 당시 대처 치하 영국 사회를 휩쓴 실업과 폭력, 인종차별, 국수주의를 그려냈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에서 주인공 소년은 같은 반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받다가 새로 전학 온 친구의 도움을 받고 벗어난다. 친구가 가르쳐준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법과 자기방어법이었다. 반면 아프리카 내전 현장을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소년의 아버지는 평화만이 폭력의 악순환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의사의 양심대로 내전의 희생자뿐 아니라 학살자마저 치료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불한당 같은 사내에게 아무 이유 없이 손찌검을 당한다. 아들은 응징을 요구한다. 당신이라면 어찌 하겠는가? ‘인 어 베러 월드’는 애들 싸움으로 윤리적 딜레마에 처한 한 아버지를 통해 인류사에서 거듭되는 폭력의 고리를 성찰한 영화다.
신작 영화‘ 대학살의 신’은 애들 싸움이 시작이다. 애들 싸움 때문에 모여앉은 부모들의 이야기다. 우아하고 정중한 서구 중산층들의 품격 높은 대화가 막장 저질 코미디로 치닫는 적나라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
또 다른 익숙한 풍경을 떠올려보자. 아이가 어디 가서 맞고 왔다. 얼굴이 퍼렇고 코피가 줄줄 흐른다. 부모인 당신은 어떻게 할까? 아니라면 당신의 자식이 친구를 흠씬 두들겨 팼다. 당신의 집 문 앞에 얼굴이 곤죽이 된 피해 소년이 붉으락푸르락 잔뜩 화난 부모와 함께 서 있다.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그래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닌 것보다는 때리는 게 낫다고 위안할 일인가?
폴란드 출신의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신작 영화 ‘대학살의 신’ 역시 애들 싸움이 시작이다. 애들 싸움 때문에 모여앉은 부모들의 이야기다. 우아하고 정중한 서구 중산층들의 품격 높은 대화가 막장 저질 코미디로 치닫는 적나라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한국으로 치자면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 버금가는 촌철살인 대사가 끝없이 폭죽을 터뜨리고, 폐부를 찌르는 유머와 코미디가 시종 객석을 덮친다. 인물과 대사, 상황과 연기만으로 만들어낸 코미디의 블록버스터다.
11살배기 소년끼리 놀다가 한 아이가 다른 친구를 막대기로 때려 송곳니 2개를 부러뜨린다. 영화는 가해자 부모가 피해 소년 아버지 어머니를 방문해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시작한다. 우아한 ‘외교적 언사’로 화해는 조화롭게 시작된다. 외교적 언사는 완곡하며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다. “우리 아이들은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지요” “명예는 사회적 맥락이 필요하지요” “당신은 예술애호가로 보여요” “이 작품에는 잔인함과 웅장함, 균형과 혼란스러움이 공존하지요” “문화와 예술은 폭력을 부정하고 평화를 옹호하지요” 등의 대화가 이어진다. 하지만 서로 숨겼던 발톱과 상처를 드러내는 데는 채 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속을 드러내는 순간 말과 단어는 구체적이고 말초적이며 노골적으로 변한다. 사과는 변명을 넘어 비난으로 향하고, 위로는 갈수록 빈정거림으로 된다. 덕담과 지적인 어휘 속에 숨겨졌던 발톱은 욕설과 저주, 인신공격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화를 잘 내는 개자식들” “망할 놈의 여편네” “우리 애가 당신 애를 개 패듯이 팼어야 했는데” “당신 애는 고자질쟁이야” “내 엉덩이로 당신이 말하는 인권의 밑이나 닦아보시지” 등 ‘f’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와 ‘s** of b****’같은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커피에서 시작해 위스키로 이어지는 회합 속에서 전선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소년의 부모로 편을 갈라서 싸우다가 남자끼리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여자끼리 뭉쳐 남편들에게 맹공을 퍼붓기도 한다. 서로 숨겨뒀던 콤플렉스가 드러나고 두 부부의 결혼생활에 도사린 갈등이 폭발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의 잘잘못을 가리는 문제는 딴전이고, 햄스터를 그냥 갖다 내버린 사건을 두고 생명존중이나 동물애호에 관한 논쟁이 돌발적으로 펼쳐지는가 하면, 아프리카 내전사태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고급 취향으로 보기 좋게 꾸며진 거실에서의 반나절 ‘티타임’은 결국 구토와 술주정, 집기파손,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며 허세, 위선, 편견, 욕망, 죄책감 등 서구 중산층의 의식이 맨몸뚱아리를 드러내는 ‘제리 스프링어 쇼’ 혹은 ‘치터스’가 된다. 그러므로 싸우는 애들한테 뭐라 할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애들 싸움이 말해주는 것은 ‘진짜 문제는 바로 당신, 어른들!’이라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suk@heraldcorp.com